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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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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간섭 안 하는 마법- 박형주(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16-08-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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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아폴로 계획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려 할 때 모든 사람이 박수친 건 아니었다. 세기의 예산낭비로 보였으리라. 전문가들의 평가인 피어 리뷰 (peer review)로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결국 기폭제가 된 건 냉전시대 적국의 최초 인공위성 발사였다. 이렇듯 과학연구 지원에서 ‘무엇을’ 지원할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어떻게’의 문제도 만만찮다. ‘지원하되 간섭 안한다’라는 문구는 바람직한 지원 방식을 마법처럼 표현한다. 당연한 말이라서 누가 반대하랴 싶지만, 그게 꼭 그렇진 않다. 당장 ‘눈먼 돈’ 아니냐는 냉소에 맞닥뜨린다. 툭하면 연구비 유용 사건이 터지니 무조건 믿어 달라 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감시를 위해 만든 각종 서류를 끝도 없이 채우는 일에 연구자들을 몰아넣자고? 재능의 낭비고 국가적 손해다.

    결국 ‘신뢰의 부재’가 문제의 본질이고, 공공재의 투입 여부 결정과정부터 설득력을 담보해야 함을 깨닫는다. 전문성에 바탕하지 않은 지원 결정이 얼마나 무모한가의 사례로 수없이 인용된 게 황우석 사건이다. 당연히 공적 자금의 투자 결정에서 피어 리뷰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피어 리뷰는 지원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동종의 전문가들끼리 벽을 치고 담을 세우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하는 거라는 차가운 시각은 어쩔 건가. 그러니까 전문가들의 평가를 통한 검증에서 살아남은 것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다음 단계가 남아있다. 이건 전문가 집단을 훨씬 넘어서는, 실제 재원을 제공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요한다. 피어 리뷰 자체를 생략하고 공공자금을 지원한 황우석 사건의 경우에는, 필요조건부터 만족시키지 못했으니 결정 과정의 결함이 분명히 있었다.

    과학 분야에서 이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리켜서 ‘공공의 과학참여’라고 한다. 원래 ‘과학대중화’라고 하다가 ‘공공의 과학이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는데, ‘공공의 과학참여’라는 확장된 표현은 쌍방향 소통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을 반영한다. 현대과학의 성취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전달하려는 과학대중화의 성장은 괄목상대하다. 대중적인 책이나 방송 다큐와 강연 등 형식과 내용이 모두 풍성해졌다. 주체는 과학자다. 여기서 주체를 ‘대중’으로 교체한 것이 ‘공공(대중)의 과학이해’다. 엘리트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과학적 지식을 전달한다는 모양이 계몽주의적 시혜를 연상시킨다는 반성 탓이다.

    쌍방향 관점으로의 전환점은 2000년도 영국에서 일어났던 광우병 공포로 인한 소고기 기피 사태였다. 영국 국민들은 정부와 과학자들을 불신했고 음모론이 만연했다. 우려를 잠재우려고 영국 농림장관이 공개 시식회를 열고 딸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려 했는데 정작 어린 딸은 먹기를 거부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과학 소통의 위기였다. 위기는 성찰을 이끈다. 과학의 성취를 대중에게 전달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각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도 GMO 농산물이나 공기청정기 살균제, 사드 배치 문제까지 곳곳에 신뢰의 위기가 배어 있다. 문제 접근의 첫 단계에선 전문가들의 피어 리뷰가 중요한데, 그 결과를 대중이 안 믿는 문제, 즉 신뢰의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살균제 문제에선 피어 리뷰 자체의 결함으로 문제를 자초했다. 결국 두 번째 합의의 단계는 엉망이 되고 음모론과 괴담이 넘쳐나는 총체적 난국이 생길 수밖에. SNS 등을 통한 지식의 접근과 공유가 쉬운 시대다.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과학대중화를 넘어서는 대중의 과학참여 방안을 마련해서 신뢰의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 이런 촘촘한 검증 구조는 피어 리뷰의 긴장도와 수준도 올린다. 그 다음엔 ‘지원하되 간섭 안 하는’ 마법이 정말 구현되지 않을까.

    박 형 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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