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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3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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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볼을 치지 마라- 박승태(창원산업진흥원 미래산업팀장)

  • 기사입력 : 2016-08-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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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일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 11시 넘어 TV 채널을 돌리다 평화방송에서 한 신부님의 강의를 보았다. 대화를 잘하는 방법을 얘기하며 상대방을 이기려 하지 말라고 한다.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무시해야 하는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야구에서 좋은 타자는 자신에게 적합한 공을 잘 골라내는 선수입니다. 하늘로 솟는 공, 땅으로 꺼지는 공들 중에서 스트라이크만 골라 쳐도 3할을 치기 어렵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겨야지, 소모적인 대화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부님도 야구를 좋아하시나 보다. 프로야구는 타고투저의 시즌으로 3할 타자가 흔해졌지만,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천부적인 자질의 LG의 이병규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 이런 선수는 가끔 원 바운드되는 공도 안타로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타자의 요건은 볼을 골라 스트라이크를 치는 것, 못 칠 스트라이크는 커트하는 능력과, 상황과 구질에 대응하는 타격일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세상사 나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관심 없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싫어하는 사람의 독침 같은 말에 마음 상하고 일일이 거칠게 대응하거나, 관심 없는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은, 황당한 볼마다 배트가 쫓아 나가다 허무하게 삼진을 먹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슈퍼맨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다른 이들이 어떤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역량이 부족하다 생각하며 항상 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슈퍼맨처럼 느끼는, 건강하지 못한 책임감이라 정의할 수 있다. 가정과 직장, 혹은 다른 관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 가운데는 어떤 일이든 슈퍼맨처럼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구가 큰 이들이 꽤 된다. 그런 의식이 지나칠 경우 ‘슈퍼맨 콤플렉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내 해결책은 정답이며 타인은 이를 감사히 따라야 한다는 비뚤어진 의식은 어떤 조직에서든 문제를 일으킨다. 사람은 자기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주인의식을 갖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 오지랖 넓은 만물박사의 충고는 설령 맞는 방향일지라도 따르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KFC의 창립자인 커널 샌더스는 “사람은 논리에 설득되고 감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한 바 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전략이 조직원들을 설득시킬 순 있어도 움직이기엔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략 얘기가 나왔으니 리처드 러멜트라는 대가의 얘기를 되새겨 본다. “좋은 전략은 단순하고 명확해 수십 장의 파워포인트가 필요하지 않다. 노력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한두 개의 핵심사안에 초점을 맞춰 자원을 집중한다. 하지만 많은 리더들이 나쁜 전략을 따르고 있다. 선택과 집중의 힘을 무시하며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동시에 수용하려 든다. 선수들에게 “이기자”라는 말만 하는 감독처럼 뻔한 목표를 제시할 뿐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지 않는다.”

    과연 선택과 집중은 전략의 요체이며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해결책의 백과사전을 쓰려는 접근방법과는 대척점을 이룬다. 신부님의 교훈처럼 볼 말고 스트라이크를 치는 선구안이 일이든 대인관계든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슈퍼맨 콤플렉스’는 개인이건 조직이건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고 관계를 악화시키기 십상이다. 선택과 집중은 마케팅, 전략 같은 기업경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가족과 친지, 소중한 사람들과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박승태 (창원산업진흥원 미래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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