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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 황당무계(荒唐無稽)- 거칠고 헛되어 근거가 없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08-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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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인문학(人文學) 열풍이 불면서 방송 등에서 특강이 자주 있고 ‘길 위의 인문학’ 등 인문학을 주제로 한 행사가 한창이다. 기업가나 사회적인 저명인사들이 모여서 인문학 특강 듣는 모임을 자주 한다. 백화점, 대형 마트 등에서도 인문학 특강이 열려 수강생들이 줄을 잇는다.

    정말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인문학의 본거지인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천대를 받아 죽어가고 있다.

    사립대학에서 학과를 없앨 때 맨 먼저 거론되는 학과가 인문계열 학과이다. 사립학교 설립자는 그렇다 치자. 교육부도 인문계열 학과를 천시하고, 심지어는 교수 출신인 총장·학장 및 학교의 보직자들도 다 그렇다.

    더욱 한심한 것은, “다른 인문학자들은 잘나가서 사방에 불려 다니는데, 당신들은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불러주는 사람이 없나”라는 시각으로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진정한 인문학은 경지에 이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한다. 매일 여기저기 다니면서 특강하고 다니는 데 정신과 시간을 뺏길 수 없다. 인문학의 수준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최소한 교육과 학문을 담당하는 교육부에서도 보호해 줘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특강 등에 불려 다니는 인기 있는 강사들은 대부분 깊이 있는 전문가는 아니다. 주워 모은 지식에다 말솜씨로 포장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하던 서울대학교 모 교수가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부관참시(剖棺斬屍)당했다”는 내용을 유명한 월간지에 실었다.

    유림(儒林)과 후손들이 난리가 났다. 결국 몇 차례 사과문을 발표하여 사태가 진정이 됐다. 전공이 아닌 분야를 건드리다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계속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히고 있는 어떤 교수의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기도 전문가가 보면 틀린 곳이 몇 천 곳은 될 것이다. 자기 전공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유명한 중앙지에 고정칼럼을 쓰는 사람이 ‘전두환 대통령의 조상이 전봉준 집안 사람으로서 동학혁명 때 고령(高靈)을 거쳐서 합천에 정착했다’라고 썼다. 결론부터 말하면 완전한 거짓말이다. 전 대통령 집안은 600년 가까이 합천에 살아 전봉준 집안과는 본관부터 아예 다르다. 이 신문 기사가 나가자 곧바로 인터넷 등에 유포돼 앞으로 역사적 사실로 확정될 것 같다. 글 쓴 사람이 틀리게 썼다 해도 이름 있는 중앙 일간지에서 책임 없이 거짓말을 유포시켜도 되는지 묻고 싶다.

    참된 인문학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한시에 능하다’, ‘주역에 통달했다’, ‘풍수지리학의 대가다’, ‘기(氣) 철학’ 등 인문학을 가장한 대중의 눈을 미혹하게 하는 사이비 학문이 판을 친다. 정말 거칠고 헛되어 근거가 없다.

    *荒 : 거칠 황. *唐 : 나라 이름 당.

    *無 : 없을 무. *稽 : 근거할 계.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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