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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직선적 사고

  • 기사입력 : 2016-08-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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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근 신부(의령본당 주임)


    젊은 부부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다섯 살 전후의 한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꾸짖자 대뜸 말을 받았습니다. 자꾸 꾸중하면 물에 빠져 죽어버릴거야! 정색하며 쏟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웃고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써먹은 협박이었나 봅니다. 어디서 저런 말 배웠을까? 부모에게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놀란 반응을 보였더니 자꾸 그런 말을 해서 이젠 아예 모른 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학교에 심하게 장난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독차지하려 했고 아이들이 선생님과 가까이 하면 어떤 형태로든 소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유별난 아이라 모두들 관심 갖고 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가 교회에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럴 수야 없지 않느냐며 선생님을 다독거렸습니다. 아이 부모는 젊은 맞벌이 부부였습니다. 언젠가 미사 끝에 만나, 아이 이야기를 하며 주일학교 교사들이 힘들어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별 뜻 없이 아이의 근황을 얘기했는데 엄마는 금방 토라졌습니다. “그러면 주일학교 안 보내면 되잖아요” 하는 가시 돋친 말에 아이 아빠는 무안해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마음이 썰렁해졌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미사 때 반주하는 학생이 영 시원찮았습니다. 노래를 인도하기보다 망치는 쪽이었습니다. 짧은 실력에 연습 부족이 역력했습니다. 차라리 반주 없이 하는 것이 낫겠건만 그래도 수녀님은 사기 문제라며 그 아이에게 계속 오르간을 맡겼습니다. 결국은 학생들 쪽에서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반주자를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새 반주자를 구하기 쉽지 않으니 넘어가자며 달랬습니다. 이 사실을 반주하는 학생이 들었는지 다음부터는 성당에 발을 끊었습니다. ‘싫으면 안 간다. 나 없이 해봐라’는 항의였습니다. 다섯 살 어린이 투정과 진배없습니다. 그런데도 흔한 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어른들 사이에도 이런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어딜 가든 정보사회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개인정보는 노출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바뀌는 소문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득 되면 관심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모른 척하게 됩니다. 사는 것이 바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아침부터 늦도록 일에 매달립니다. 밤이 돼야 가족을 만납니다. 다음날 또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삶의 여유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만남의 장소로 이해됩니다. 일요일에 한 번 사람들 만나는 휴식공간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선 어떤 형태로든 영적 체험을 만나야 합니다. 한순간이라도 하늘의 힘을 느껴야 합니다. 한 주일 동안 겪었던 사건 속에서 하늘의 개입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때 열렬했던 사람들도 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실망과 무의미를 만났기에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에서 하늘의 힘을 체험 못하면 교회의 많은 것들은 불만으로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을 바꿔봐야 합니다. 그러면 현실도 바뀝니다. 현실이 변해야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환상입니다. 가기 싫다. 나 없이 해봐라. 조금은 차가운 생각입니다. 가겠다. 함께 해보자. 조금은 따뜻한 생각입니다. 그런 전환일 때 인생의 많은 부분도 그렇게 따스한 변화를 만나게 됩니다.? 신은근 신부(의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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