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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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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스포츠가 ‘각본 있는 드라마’라면…- 서영훈(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6-08-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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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 열대야 때문이 아니다.

    산 아래 아파트 15층에 살다 보니, 아무리 덥다 해도 창문만 열어 놓으면 도중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꿀잠을 잘 수 있다.

    열대야 탓이 아니라면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겠거니 하겠지만, 이 또한 아니다. 관련 업무를 맡고 있으니, 스포츠 그것도 리우 올림픽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은 지킨다. 매일 아침 뒷산 둘레길을 달리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모른다. 컨디션이 떨어진 상태에서 달리면 재미는 줄고 고통은 커진다. 그 재미가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만큼 강하다.

    단잠을 깨우는 건 이웃에서 나는 고함소리다. 어떤 때는 탄식으로, 어떤 때는 환호로 들린다. 창문을 열어 놓으니, 소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한국과 독일 축구 예선전이 열리던 그날 새벽, 깨고 잠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날 한국과 독일은 3골씩을 주고받았다. 비슷한 시간, 양궁 여자 대표팀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전날 새벽엔 양궁 남자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역시 금을 땄다.

    올림픽이 끝나는 날까지 편한 잠을 자기는 힘들게 됐다. 지난 며칠 동안의 경험에 비춰, 이웃들은 시시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를 것이고 그때마다 수면을 방해받을 것이다.

    이웃 사람들이 리우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탄식하고 환호하는 것은 경기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지 알고 있다면, 굳이 경기를 지켜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본다고 해도, 그런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에 비유한다. 연출되지 않은 것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올 경우 흥분의 정도는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스포츠에 각본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1960년대 초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이 큰 인기를 끌었다.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은 수많은 시청자들은 레슬러의 멋진 동작 하나하나에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보냈다.

    그러다가 이 스포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라졌다. 쇼의 요소가 강했던 프로레슬링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었다.

    만약 각본 있는 스포츠가 프로야구라면 어떻게 될까. 프로야구가 비록 이 시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는 프로스포츠라고 하여 그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프로야구 중계방송에서는, 캐스터나 해설자가 “이런 게 야구죠” 하는 말을 심심찮게 한다. 뻔하게 보이던 경기결과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거나 아예 뒤집어졌을 때, ‘야구의 묘미는 이런 데 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선수들이 공을 치고, 받고, 던지는 모습 그 자체가 훌륭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의외성이 더해지면서 흥미는 배가된다.

    그런데 프로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경기의 결과가 뻔히 보이거나, 아예 사전에 결정돼 있다면, 팬들은 더 이상 경기장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승부조작과 같은 ‘각본 있는 스포츠’에 열광할 팬들이 있을까.

    서영훈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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