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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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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미니멀리즘과 자발적 가난에 관해- 정진혜(서양화가)

  • 기사입력 : 2016-08-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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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예술 스캔들로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이우환, 조영남의 위작·대작 논란의 열기가 사그라진 듯하지만 정치인들의 분쟁에 의해 수면 아래로 가 있을 뿐 사실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경제는 갈수록 더 어렵다. 사는 것이 더 힘들다 하는 민생의 목소리는 여름의 더위와 함께 지수가 올라가고 사회 정치적 사건들 또한 물리적, 정신적 불안전 지수를 높이는 올여름,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휘둘리거나 얽매이지 않고, 물질과 욕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삶의 의지적 선택으로 더위를 가지는 생활패턴을 찾아보게 되었다.

    자발적 가난은 정신적 수양을 동반해야만 가능한 조금은 높은 차원의 사유를 요구하며, 삶의 형태를 축소하고 삶의 속도도 늦추는 생활방식을 희구한다. 자신이 있는 자리를 인정하는 가난의 긍지이며, 최소의 요소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근거하며 미니멀리즘의 단순하고 담백한 삶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자발적 가난과 미니멀리즘은 동일시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미니멀리즘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예술 분야에서 출발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최소한의, 최소의, 즉 미의’라는 뜻을 ‘미니멀(minimal)’과 ‘주의’라는 뜻의 ‘이즘(ism)’을 결합한 예술사조다. 이러한 사조는 서구 예술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권에서도 현상학과 함께 동양의 고유정신을 자신의 작업에 활용한 작가가 있는데, 그 대표적 작가가 이우환이다. 점과 선으로 회화의 본질까지 파고드는 문제 제기는 새로운 충격으로 화면에 등장하였고, 자기만의 양식을 확립하여 자기의 생각을 현상화시키는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는 평가를 들으며 거장이 되었다.

    작품이 한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라고 볼 때 이우환의 예술 철학이 그의 삶과 어느 정도 일치했다면 과연 위작 논란의 사건이 있었을까. 물론 논란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가 불거진 후에라도 그가 추구했던 예술철학에서처럼 미니멀하게 즉 깔끔하고 담백하게 진실의 실체를 드러냈더라면 이우환이 포퓰리즘의 오물을 뒤집어쓰지는 않았을 것이며 일반인들의 심리나 태도, 평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우환은 설마설마했던 대중들의 신의를 저버린채 잘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춰서 매연만 내뿜는 격이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자발적 가난이라는 위대한 선택을 했더라면 이우환은 진정한 거장으로 미술사에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안타까움이 더하다. 오랜 시간 대중들은 이우환의 정신 철학을 높이 사왔고, 비평가들은 높은 평가로 현대미술, 즉 미니멀리즘 화가로서 그가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제 가치평가는 달라졌다. 지금 예술의 가치평가는 작품구매자들이 한다. 장인예술이든, 개념예술이든, 비평가들은 가치기준만 제공할 뿐이지 가치 판단은 사실 트릭에 불과하다. 예술가가 자신의 가치 판단을 놓았을 때 가치 판단의 주체는 이미 비평가가 아닌 대중(구매자)에게 넘어갔다. 과거 미국과 유럽에서처럼 대량 소비와 지나친 소비주의에 의한 비판의식이 생기면서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미니멀리즘 같은 대안적인 생활방식 즉 텅 빈, 미학적인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라이프(minimallife)’는 자발적 가난과 뜻을 같이 한다. 이우환 조영남 위작·대작 논란도 결국 예술작품의 잘못된 유통형태와 소비, 경제의 축적에 가치를 둔 정신적의 결여에서 파생된 사건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자발적 가난이야말로 참으로 성스러운 선택이고 그로 인해 진정한 작품세계에 몰입할 수 있고, 뚜렷한 가치관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자발적 가난은 유일하게 창조적 가난, 그러니까 자유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성스러운 가난이다. 이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미래와 존재에 반하는 투쟁이며 야망과 권력에 얽매여 사랑을 잃고 자아를 상실한 채 타인에게 운명을 내맡기는 삶의 확실한 해독제이다.’ -안드레 밴턴브뤼크-

    정진혜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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