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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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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스토리텔링 시대의 캐릭터- 이주언(시인)

  • 기사입력 : 2016-08-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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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대체 누구야!”라는 만화 대사를 보며 한 만화작가가 떨고 있었다. 주인공을 죽임으로써 스토리를 끝내려 하는 만화작가에게 만화 속 주인공이 던진, 자생적 대사기 때문이다. ‘W’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에서, 만화 속 세상은 현실과 같은 차원의 존재감을 갖는다. 작가에 의해 작중인물의 운명이 결정됐던 전통이 깨진 것이다. 작가가 부여하는 운명을 주인공이 거부하기도 하고, 이미 창작된 세계의 일부가 지워지면서 저절로 스토리가 생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뒤섞이거나 동등한 존재방식을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우리가 그런 시대에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토리 속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은 게임이나 문화예술 속 캐릭터들이 실제 인물보다 더 리얼할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게임, 영화, 광고 등에 점점 빠져들며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잘된 드라마 한 편의 수익이 어마어마한 것도 허구의 세계를 즐기려는 수요자가 많다는 의미다. 이는 스토리나 캐릭터들이 대리만족을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스토리가 있는 문화예술 상품은 단지 ‘꾸며낸 이야기’라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창원시가 ‘문화예술특별시’를 선포했다. 공업도시 이미지를 벗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창출하고자 한다. 이런 노력 중 하나가 기존의 스토리를 발굴하거나 새 스토리를 생산해 그것을 상품화시키고 홍보하는 일일 것이다. 이때 문화콘텐츠 속 인물, 즉 캐릭터의 광고 효과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캐릭터가 널리 알려지면 그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문화상품으로 탄생될 수 있다.

    우리 지역에서 기존의 스토리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작고한 유명 작가의 소환이다. 그들의 삶은 자체가 스토리이며 또 그 예술가들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역할을 한다. 타 지역을 방문할 때 그 지역 출신의 예술가를 기념하는 문학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런데 타지에서 손님이 올 때면 문신미술관처럼 우리지역의 예술을 체험하게 해줄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문학관과 미술관이 특화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명인과 관련된 것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마산음악당, 마산문학관 등의 문화공간이 유명 작가의 예술과 스토리의 저장고로 특화돼야 할 이유는 수요자가 적기 때문이다. 현재로는 조두남음악당이나 노산문학관이라는 명칭을 반대하는 사람들마저 별로 이용하지 않는 것 같다. 이용자가 없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나 다름없다.

    유명인의 일대기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될 수 있다. 열정과 고뇌의 삶 속에서 생산된 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꼭 그 예술가가 위대해서가 아니다. 예술적 성취와 삶의 오점을 함께 펼쳐 보임으로써 성공과 좌절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더 많은 얘기를 건네게 하고, 과거로 사라진 일들에 몰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펼쳐진 그의 삶에 얽힌 스토리는 그림들을 더욱 감명 깊게 보도록 이끌었다. 작고한 예술가들도 살아 숨쉬는 듯한 존재감을 안겨주며 스토리를 생산한다는 걸 느꼈다. 물론 이중섭의 경우는 시민단체에서 거부할 만한 행적이 없는 작가지만, 예술적 성취는 생애와 다른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문화예술 자산을 썩히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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