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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광복절에 귀환한 민족이라는 근대의 기억- 이택광(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16-08-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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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티파니가 지난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일장기 이모티콘’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광복절을 앞두고 적절하지 못한 처사였다는 것이다. 특히 이모티콘의 도안은 이른바 ‘욱일기’라고 불리는 문양을 사용한 것이어서 더 문제가 됐다. 보통 ‘욱일승천기’로 알려진 일본 깃발 문양은 경축일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국주의 시절 일본 해군과 육군의 군기로 사용된 까닭에 또 다른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게 됐다고 하겠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티파니는 과연 ‘욱일기’의 다른 의미를 몰랐던 것일까? 진정 과거의 역사에 무지해서 ‘어린 여성’은 철없는 행동을 했던 것일까? 이 모든 것이 역사교육의 부재와 역사적 정통성 없는 정부 때문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일모레면 서른 살을 눈앞에 둔 가수 티파니가 ‘어린 여성’일 수도 없고,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은 설령 정규 역사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알 수 있는 상식적 정보이다.

    남는 문제는 역사적 정통성 없는 정부의 문제인데 이 가설도 가만 생각해보면, 개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적으로 사진을 올리는 것이 정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정부가 정보기관을 비밀스럽게 동원해서 일부러 ‘욱일기’를 광복절에 맞춰 올리라고 사주한 것이 아니라면, 가수 티파니가 문제의 사진을 업로드한 것과 정통성 없는 정부의 관계는 쉽게 해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가수 티파니의 행위는 비난을 들어야 했을까? 나는 이것이 민족주의에 내재한 외설성을 드러내는 예증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통해 온전히 재현할 수 없는 감춰진 열정을 드러낸다. 민족주의는 종종 자유주의와 대립적인 것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지지만, 딱히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민족이라는 상징적 단위보다도 인민이라는 정치적 개인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지 않지만, 자유주의 역시 민족을 상상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중국과 영국을 비교하는 그 상상력은 민족이라는 상징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민족주의를 촌스럽고 시대에 뒤처진 낡은 이데올로기로 간주하지만, 사실상 민족주의는 근대적인 산물이고 오늘날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많은 정치적 개념들을 만들어낸 기반이다. 민족을 개인과 동일시하거나 또는 개인의 집합으로 ‘동포’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자유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사회다윈주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같은 세포를 뜻하는 ‘동포’가 민족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에 대한 개념이란 것도 그래서 흥미롭다. 이 지점에서 생물학적 상상력이 자유주의적 도덕의 추상성을 대체해버린 것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런 까닭에 상당 부분 생물학적 상상력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회다윈주의에 이르면, 개인은 오직 국가라는 더 큰 생명체를 위한 세포로서 인식된다. 국가라는 생명을 유지하고 더 강인하게 만들기 위해 개인이라는 세포는 하나의 몸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이런 상상의 핵심이다. 박정희 시대가 그랬고, 지금 북한이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근대사상가 양계초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을 돌아보고 쓴 ‘구유심영록’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민족주의가 어떤 맥락에서 형성된 것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양계초는 시종일관 다수의 유럽 대 중국이라는 구도를 사유의 틀로 유지한다. 그러나 그 하나의 중국은 당시에도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민족국가를 개인과 동일시하는 이런 사고방식이 오늘날 ‘경제적 인간’의 천국 아시아를 만들었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근대적 관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티파니의 잘못이라기보다 근대의 교착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문제가 반복해서 귀환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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