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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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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백수가 지리산 둘레길로 간 까닭은?

■ 백수라서 다행이다

  • 기사입력 : 2016-08-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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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10일, 마지막 직장을 떠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고교 동창 두 명과 함께 13일 동안 함양군 금계를 출발해 산청, 하동, 구례, 남원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지리산 둘레길 250㎞를 걸었다.

    저자를 지리산 둘레길로 떠민 것은 ‘더 이상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의 생산활동을 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20대 중반의 청년이 됐지만, 아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실직 상태에 빠진 아비로서의 심적 압박감은 컸다. 무시로 날아오는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고지서는 ‘당신은 실직자’라고 재확인시켰다.

    잠시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까놓고 말하면, 지리산 둘레길은 그에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피처였다.

    시간을 반추하거나, 미래를 설계하거나, 자연 속에서의 깨달음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둘레길에 들어서는 것과는 달랐다.

    저자는 백수생활을 대나무의 매듭에 비유한다. “속이 텅 빈 대나무가 곧게 높이 자랄 수 있는 건 매듭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그렇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이런 매듭들이 없다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어 내겠는가”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저자는 4번의 ‘만들어진 매듭’이 있었기에 인생 5막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저자는 지리산 둘레길에서 돌아온 지 석 달 뒤부터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여정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울컥할 때가 있다. 그땐 저자가 일러주는 대로 ‘고개를 들고 어깨에,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헛기침을 크게 한 번 하고’ 끝까지 따라가 보자.

    저자는 말한다.

    “이 보잘것없는 이야기가 지금 비슷한 상황에 있거나 아니면 향후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작으나마 용기나 위안이 된다면 더없는 영광이겠다.”

    박한규 지음, 인터북 펴냄, 1만3000원

    서영훈 기자 float2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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