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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전기요금과 관료주의의 벽- 노동일(경희대 법대 교수)

  • 기사입력 : 2016-08-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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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주의란 조직의 공정성, 합리성, 효율성을 기할 수 있도록 위계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전문적 관료들의 체계를 말한다. 관료주의는 업무 처리에 있어서 공평무사의 원칙에 따라 합리성을 실현한다. 임용과 보수는 능력주의에 따르고, 통제력의 집중과 위계적 질서에 의해 능률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관료주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독선적 권위주의, 행정적 형식주의, 무사안일, 책임전가, 규정 만능주의 등을 말한다. 관료주의에 젖은 조직의 구성원들은 상급자에 대해는 아첨하고 하급자에게는 거만하며, 까다로운 업무는 적당히 넘기고, 자기 업무 이외에는 무관심하며, 독선적이고, 책임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등의 특징을 나타낸다. 온라인에서 찾아본 ‘행정학 사전’ 등은 관료주의를 이처럼 풀이한다.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은 이 같은 부정적 관료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숨 막히는 더위에 시달리는 국민들이지만 에어컨조차 제대로 틀지 못한다. 말 그대로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서다. 최고 11.7배까지 가중되는 징벌적 누진제 비판은 매년 여름 되풀이된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국민을 더 열불 나게 만든 것은 누진제를 강변하는 산자부 관료의 권위주의적 태도이다. 에어컨을 하루 서너 시간만 틀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 아침부터 시작된 찜통 더위가 기록적 폭염으로 이어지고 잠을 이루기 어려운 열대야도 수십일째 지속 중이다. 하루 종일 에어컨 속에서 긴팔 옷을 입고 근무하는 고위 관료들이니 국민들의 사정을 알 턱이 없다. 거짓 논리로 누진제를 옹호하는 점은 더 어이없다.

    가정용 전력 수요는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 지금보다 가정에서 20%를 더 써도 전체 사용량에서는 15.6%에 불과하다. 여름철 전력대란이 우려되는 피크 타임은 오후 2~3시이다. 가정용 전력소비는 그 시간에 오히려 줄어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정용 전력소모가 많은 시간은 가족이 모이는 저녁 7시 시작해 9시 전후로 피크를 이룬다. 가정용을 더 쓰면 전력대란이 우려되고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협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전기를 절약해야 한다는 대의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문제는 가정에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그것도 징벌적인 누진제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상업용과 산업용에도 누진제를 하든지, 모두가 사용량만큼 내게 하든지 같이 대우하란 얘기다. 전기료 8만여원 내던 집이 3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면 폭탄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국민의 삶이다. 어린 아이들이나 노부모가 있는 집에서는 8월 전기요금이 100만원까지 나올 거란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공무원들은 하루 4시간만 더운 모양이죠?” “고위 관료들은 부자라 전기료가 부담스럽지 않나 보네요.” 산자부 공무원의 인터뷰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의 일부이다.

    전기요금 논란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은 국민을 대하는 관료들의 시각이다. 얼마 전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한 교육부 공무원은 파면처분을 받았다. 전기요금을 대하는 관료들의 생각 역시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국민은 계도의 대상이요 다스림의 객체라는 것이다. 똑똑한 고시합격자들이 만들어낸 정책을 우매한 국민들은 따라오기만 하라는 발상이다. 여론에 오불관언하겠다는 태도는 자신들이 국민의 위에 있다는 생각의 발로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갑자기 바뀐 관료들의 태도는 우습기까지 하다. 누진제 고수를 위해 기자회견을 하더니, “누진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었다”고 180도 회전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님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앞서 인용한 온라인 행정학 사전은 ‘관료주의’를 이렇게 맺고 있다. “민주주의가 생활화되지 못한 후진국이나 발전도상국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관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이나 발전도상국’에 불과하다. 특히 ‘민주주의가 생활화되지 못한’ 것은 물론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의 개념조차 부족한 관료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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