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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마음을 닫으셨네요.'

[기자가본] 김유경 기자 - 통영에서 작가 이병률을 만나다

  • 기사입력 : 2016-08-22 18: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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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일요일 통영에 다녀왔더랬습니다.
    미쳐버릴 듯한 염천이지만 휴가는 아니구요,
    경남대학교 청년작가아카데미에서 이병률 작가를 초대해 강연 자리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참이었거든요.
    워낙에 유명한 시인이자 여행작가이니 아니 가볼 수가 없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가, 호기심이 일었거든요.
    친한 친구가 이병률 작가의 팬 중에 팬이라 친구랑 동행하고 싶기도 했구요.

    메인이미지

     
    강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수첩 같은 색색의 자그마한 노트를 잔뜩 들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분이 강연의 주인공이더군요.
    작가님은 진청바지에 운동화, 소매를 살짝 접은 녹색 셔츠를 입고 계셨어요.
    모습은 단정하고 눈빛은 예민하지만 담백하고, 오히려 어떤 부분은 허술하고 외롭다는 느낌이 드는 분이었습니다.
    워낙에 강연 시작시간에 딱 맞게 도착하는 바람에
    황망한 마음으로 수줍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보다 더 수줍게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강연은 도남동 통영청소년수련관에서 2시간가량 이어졌습니다.
    강연 주제은 '가끔은 미쳐야 산다'.
    시작도 전에 저는 주제가 참 마음에 든다고, 맞는 말이라고, 혼자 몇 번이나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며 한 번쯤은 '미치지 않고는 살아내기가 참 어렵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세계관이기 때문이죠.
    물론 저의 신념이 작가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인지 그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강연의 주내용은 작가가 글을 쓰게 된 배경, 글을 써온 과정,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미쳐서 사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유명 여행작가이니만큼 여행을 다닌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번 강연에서는 미크로네시아의 어느 무인도에 들어가 한동안을 자급자족했던 이야기와 그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여러 장 보여주었습니다.
    사진들도 워낙 감각적이라 눈을 떼기가 어렵더군요.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직접 나뭇잎을 채집해 얼기설기 만든 집, 해양생물의 속살이 낱낱이 드러나 보이는 물빛이…
    뭐랄까, 가슴 속에 한껏 바람이 일게하고, 두 눈을 아프게 찌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연 내용을 일일이 받아 적지 못했고, 그렇다하더라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는 노릇.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내용만을 추리고 추려 적어보려 합니다.
    이병률 작가님은 충북 제천 사람이더군요.
    중학교 2학년 때 글을 쓰겠다는 꿈을 처음 꿨다는데, 신기하게도 지금껏 한 번도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 느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름이 잡을 병(秉)자에 법률 률(律)자를 쓰는데, 부모님이 이름에 법관이 되라는 뜻을 담았다고 했어요.
    학창시절 흠모하던 국어 선생님이 '병률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선생님이 작가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시인이 되어야겠구나.'
    말이라는 게, 일단 입 밖으로 발설되어버리면 바람에 실려 온데간데 없어지는 민들레 씨앗 같기도 하지만
    어떤 말들은 무시무시한 실행력을 가진 강력한 주문이 되기도 하나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작가님은 법의 리듬이 아닌 언어의 리듬을 잡고 살게 된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105개국을 다녔고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1년 12달 중 6개월은 방송작가로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나머지 6개월은 여행을 떠나는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방송작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는데, 신해철, 유희열, 이소라의 FM 음악도시 작가로 활동하셨더군요.
    강의 말미에는 '피를 바꾸려고 여행을 간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게 소심한 A형인 자신의 피를 대범한 피로 바꿔보려 한다는 말 같았지만,
    글쎄, 제 귀에는 '피를 바꾼다'는 말이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굉장히 많은 것들을 담은 은유법 같았습니다.
    피에 순응해서 살지 않겠다는 것, 그건 정말 미쳐야만 가능한 일 같았거든요.
     
    자리를 옮겨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함께 했더랬습니다.
    공교롭게 저와 친구는 이병률 작가님과 마주앉게 되었구요.
    직업적 호기심에, 또 한 사람의 독자로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이것저것 묻게 되었습니다.
    '통영에 관한 글을 쓴 것이 있느냐?' '경남 사람들은 좋은데이를 마신다. 좋은데이를 마셔본 적이 있느냐?'…
    그때마다 작가님은 네, 혹은 아니오, 이렇게 짧게 답을 하셨는데, 그게 그 분 스타일인 것 같았죠.
     
    그런데 헤어질 때 즈음, 이병률 작가님이 저에게 이러시는 겁니다.
    '마음을 닫으셨네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죠.
    '저 예민해요.'
    이런, 허를 찔린 기분이었습니다.
    한 5초 동안은 멍한 상태로 작가님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죠.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 '말하지 않음'을 통해 작가님은 정확하게 저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거죠.
    마음을 쉽게 닫는 것, 또 그만큼 쉽게 열지 못하는 것.
    그 누구로부터도 손톱만한 상처도 받지 않겠다는 다락 같이 높은 자존심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제 피였던 겁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글은 늘 '사람'이 가장 큰 주제였다는 것도 떠올렸죠.
    아아,
    그렇다면 작가님 저도 6개월 일하고 6개월은 이곳을 버리고 세상을 두루 다니며 미쳐봐야 할까요?
    애석하게도 이런 질문이 떠올랐을 무렵엔 작가님은 서울을 향해 가고 있었고 저는 창원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워낙 그렇지 않나요?
    또 어느 날 어느 곳에 또 뵙게 될지, 그땐 꼭 여쭤보려고 합니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둘 수도 있음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랑의 이사를 떠나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그가 없는 빈집 앞을 서성거려보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 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 이병률 여행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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