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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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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눈물 젖은 빵’이 더 낫다- 이문재(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6-08-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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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고 또 듣는 얘기가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일 것이다. 아는 사람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 때, 또 전화의 끄트머리에 습관처럼 따라붙는 게 ‘밥 먹자’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굶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대화에서 ‘밥’은 지겨울 정도로 빠지지 않는다. 술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만남이나 대화가 끝날 즈음 ‘언제 술 한잔 같이하자’는 말이 버릇처럼 튀어 나온다. 마치 ‘밥’과 ‘술’을 들먹여야 대화가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서로 편안히 갈 길을 갈 수 있는 양. 하지만 듣는 사람이나 말을 하는 사람이나 이미 알고 있다. ‘밥’도 ‘술’도 어지간해서 같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도 마음만은 흐뭇하다. 상대가 ‘밥’이든 ‘술’이든 같이하자는 것은 아직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또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밥이나 술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섭취(攝取) 이상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나누고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먹는 행위를 통해 가족이, 연인이, 동지나 파트너가 생성되고 또 유지되는 것이다. 유명한 투자가와 한 끼 식사를 하는 데 얼마를 줘야 한다는가, 꼬일 대로 꼬였던 정국 (政局)이나 외교 문제가 점심 한 방으로 풀렸다는 얘기는 ‘같이 먹는 것’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의 방증이다. 거꾸로 보면 죽어도 밥 한 끼 하기 싫은 사이라면 적(敵)이거나 남일 수밖에 없다.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과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1인 가구의 증가, 쫓기듯이 살아가야 하는 경쟁사회, 경기 불황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 등 원인은 다양하다. 이 모두가 타인과의 유대를 방해하는 것들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혼자 살기도 벅찬 현실이 특정 집단에 묶이거나 타인을 의식해야 되는 것을 피해, 혼자서 해결하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들을 겨냥한 간편식 시장은 폭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고, 하루가 멀다하고 신메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서 1인 가구 비중이 오는 2020년에는 30%를 육박한다고 하니 간편식의 증가세는 쉬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같이 먹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배고픔이라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다양한 관계를 이어간다. 식탁에서 가족, 사랑, 비즈니스 등이 깊어지고 무르익는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모여서 같이 먹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혼자 숨어서 먹는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기도 하고 차별화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아마도 인간이 혼자 먹는 습성을 가졌다면 오늘날의 문명은 없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눈물 젖은 빵’보다 더 서글픈 게 ‘혼자 먹는 고기’일 것이다. 눈물 젖은 빵을 씹더라도 눈물을 닦아줄, 괴로움을 나눌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다지 실패한 삶은 아닐 것이다. 위안과 격려를 통해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점점 ‘혼밥’과 ‘혼술’을 강권하고 있다. 이로 인한 대화와 소통의 기회는 점차 줄고 있다. 등을 돌린 채 홀로 고기를 어적어적 씹어대는 동물이 우리 미래의 자화상이라면 끔찍한 일이다. 밥 한 끼, 술 한잔, 다투듯 청하는 왁자지껄한 세상을 바란다.

    이 문 재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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