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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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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이도열 고성탈박물관 관장

“욕심으로 생기는 온갖 ‘탈(병)’을 막아주는 게 ‘탈(가면)’입니다”

  • 기사입력 : 2016-08-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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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년 고성오광대에 입문 후
    다양한 탈 모양·이유 궁금해
    관련 책 등 닥치는 대로 공부
    1986년 탈 제작 기능이수자 돼

    탈은 인간 마음-자연 잇는 매개
    생명력·혼 불어넣어 제작해야
    액과 탈 막는 장승 제작 함께해
    내 고장과 내 조국 지키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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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망인 욕심으로 생기는 여러 가지 탈(병)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탈(가면)입니다. 장승과 같은 탈은 미신이 아닙니다. 이건 바로 조상의 지혜입니다.”

    탈을 연구하고 만들다 탈이 돼버린 사람 이도열(69). 그는 안동탈박물관에 이어 전국서 2개뿐인 고성탈박물관 관장이며 장승학교 교장이다.

    탈이란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해 나무, 종이, 흙 등으로 만들어 얼굴에 쓰는 물건이다. 인간은 수천 년 전부터 탈을 만들어 썼다. 종교의식을 행할 때도 춤출 때도 위엄을 과시할 때도 썼다. 남이 모르게 무슨 일을 꾸밀 때도 탈을 뒤집어 쓴 채 행하기도 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차마 못할 짓을 다른 탈을 쓰고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도 대자연의 재앙으로부터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불어 닥친 인생의 고난을 막는 방편으로 탈을 만들었다. 그래서 탈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탈 많은 세상에서 탈을 막는 외길 인생을 살고 있는 고성탈박물관 갈촌 이도열 관장. 어느덧 자신의 인생이 돼버린 이도열의 탈 속으로 들어가 보자



    ◆탈 같은 사람

    이도열, 그의 탈은 해탈(解脫)이다. 이 관장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탈 같은 얼굴과 소탈한 웃음, 허물없이 사람을 대하는 특유의 화법에 마음을 열게 된다. 탈과 함께 살아온 30여년, 탈을 연구하고 수집하고 만들다 보니 그도 탈이 된 것이다.

    이 관장도 처음부터 탈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70년대 초 농민운동을 하다 농촌문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1977년 고성의 민중문화유산인 고성오광대에 입문했다. 고성오광대 춤을 배우다 보니 탈의 눈, 코, 색깔, 크기가 매우 다양한 이유가 궁금했다. 당시 고성오광대 탈을 만들던 허종복 회장에게 물어보고 당시 탈을 만들던 박갑준씨를 사사하며 국내에 소개된 여러 도록들과 탈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당시로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탈을 배우려고 전국을 헤매고 다니기도 했고, 단군 탈을 찾으려 중국 천산까지 발품을 팔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그는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탈 제작 기능이수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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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열 고성탈박물관 관장이 작업실에서 도깨비 탈을 만들고 있다.


    ◆탈의 세계로 빠져들다

    탈에 관심을 가지던 80년대 후반 이 관장이 탈의 세계에 빠져드는 계기가 있었다. “고성 학다리라는 곳에서 5살쯤 돼 보이는 손자와 할아버지가 다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야단을 치자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디다. 할아버지 그러면 탈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아이를 더 이상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탈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탈의 사상을 깨달은 이 관장은 “탈 안 나는 법을 알아내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며 탈과의 진한 인연을 다시 부여잡았다. 그의 탈 세계에는 고성오광대 탈, 농악놀이 탈, 연극·연희용 탈 등 예능 탈 뿐만 아니라 조개 탈, 장군 탈, 처용탈 , 십이지 탈 등 인간의 탈을 막는 모든 조형물들이 포함된다.

    이 관장은 “연(緣)에 어긋나면 액(厄)이 들고 탈이 난다. 이 세상은 인간만의 세상이 아니다. 만물이 함께하는 세상이다. 노래 불러도 만물과 더불어 노래하고 그림도 춤도 만물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탈은 그에게 있어 인간의 희로애락과 자연을 이어주는 매개이며 후세에 전해야 하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인 셈이다. “탈 안 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한국의 탈이에요.” 그래서 이 관장은 “탈 작업은 수행의 과정이며 신앙이자 기도가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 관장은 “단순히 탈의 형상만을 빚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과 혼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과 자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진정한 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변함없는 철학이다. 이 관장은 예능 탈에다 신성 탈, 자연 탈, 문자 탈, 그림 탈 등 온갖 세상의 탈들을 만들고 있다. 고성탈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탈 공방 2층에는 수백개의 온갖 탈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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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열 관장이 자신이 만들고 있는 탈사전 앞에서 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오광대와 장승

    그중에서도 이 관장과 궁합이 맞는 탈은 단연 고성오광대 탈과 장승이다. 고성오광대 탈은 한지(닥종이)로 만든다. 물에 불린 한지에 닥풀을 섞어 탈의 형상을 만든다. 그리고 1주일 동안 말려서 굳힌 뒤 색을 칠한다. 그런 다음 그늘에서 2년간 말린다. 이때부터는 색이 산화돼 바래지기 시작하고 곰팡이도 스는데 이 곰팡이를 닦아내는 과정이 3년여 동안 계속된다. 이렇게 5년 정도가 지나면 아무리 닦아내도 곰팡이는 더 이상 없어지지 않고 생명을 부지한다. 이 관장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고성오광대 탈에 주목한 것은 탈 완성 과정이다.

    “탈은 내가 만들지만 완성은 자연이 합니다.” 수년 동안 건조되는 과정에서 자연은 탈의 색깔을 변하게 하고 비틀어지게도 하고 하나같이 똑같은 것이 없다. 이 관장은 “탈에 혼이 들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5년여의 시간이 오히려 기대되고 즐겁다”고 한다. 그가 고성오광대 탈을 즐기는 이유다.

    이 관장은 최근 15년여 동안 특별히 장승에 집중하고 있다. 장승은 마을 입구에 있으면서 그 마을로 들어오는 모든 나쁜 재앙을 막아준다. 마을 동구 밖에서 늘 만나는 이가 장승이다. 비바람이나 눈보라에 끄떡없이 늘 우리 곁에 있는 이도 장승이었다. 이 관장은 “어려운 고난에도 사나운 질병에도 꺾이지 않는 의연한 모습. 누구보다 먼저 마을을 지키는 선봉장의 모습. 액과 탈을 막기 위해 장승은 방방곡곡에 세워지고 전해졌다”고 말했다.

    그가 장승에 집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장승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장승이 마을의 수호신이면 장승꾼은 살아있는 수호신이 되는 셈이다. 내가 주인이 되고 내 고장을 내 조국을 지키는 작업이 장승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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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탈박물관 입구.


    ◆고성탈박물관과 탈 사전

    고성탈은 고성군 고성읍 율대리 고성탈박물관에서 전승되고 있다. 이 관장은 처음으로 탈 박물관을 구상한 후 지난 1988년 사재를 털어 갈촌탈박물관을 개관했고, 고성군은 2005년 12월 국내 최초 공립탈박물관인 고성탈박물관 건립으로 화답했다. 이곳에는 이 관장이 그동안 수집한 각 지방의 무형문화재 탈 1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앞뜰에는 장승공원이 조성돼 있어 400여 개의 각종 장승들이 박물관을 지키고 섰다.

    이 관장은 장승학교 운영과 함께 탈 사전을 제작 중이다. 구상하는 탈 사전은 4만개. “탈 사전은 맥의 탈 원천지탈입니다. 사전에서 나타나는 형상들로 우리의 해탈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 관장에게는 큰 고민이 있다. 후진 양성이다. 장승의 경우는 장승학교를 통해 2000여명의 제자가 양성됐지만 탈은 제자가 없다. “탈춤은 인간문화재가 있는데 탈 제작은 인간문화재가 없습니다. 탈 제작을 탈춤의 소속으로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탈 만들기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탈이 된 사람 이도열. 그는 마음의 위로를 받고 편안해지는 해탈의 세상을 꿈꾼다. 좋은 것도 탈이고 나쁜 것도 탈이라며 호탕하게 웃는 이 관장은 자신의 소망을 말하며 만남을 끝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인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탈과 장승을 만들다 내 스스로 장승이 되어 고향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고 싶습니다.”

    글·사진= 김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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