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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명형대(경남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16-08-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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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과 기억

    2015년 6월 24일, 이날 마산공설운동장 야구장에서는 야구가 한창이었다. 갑자기 용마산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연기는 바닷바람을 타고 산호공원을 뒤덮었다. 10여 분 동안 경기가 지연되고 이튿날에는 지하련의 집이 불탔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탔다. 느닷없는 한 화재 사건이 원(怨)의 여인을 우리 앞으로 끌어왔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타다만 옛집은 굳게 문이 닫힌 채, 아무렇게나 자란 팔손이, 종려나무, 향나무, 아왜나무가 가지를 뻗어 있고, 거칠기 짝이 없는 한삼덩굴과 풀숲은 정원을 뒤덮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매몰되어 가고 있다.

    1930년대 후반, 한 시대 마산을 살다간 여류 소설가 지하련의 애틋한 사랑과 비운의 역사가 마산의 산호리와 바다에 슬픈 파도를 일으킨다.

    새시대와 문화산업

    화려했던 밀레니엄 시대의 서막을 알렸던 2000년. 그 이후 세계는 문화산업에 전력을 다한다. 문화적 유산을 발굴해 이를 관광산업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본이 인문학과 결탁, 융합되는 새로운 산업의 동력으로서의 문화산업은 우리들의 삶을 물심양면으로 풍요롭게 한다. 창원시는 조수미를 명예문화대사에 위촉하는가 하면 우리 시를 문화예술도시로 선포하고 그동안 로봇랜드, 해양문화도시, 문화예술복합타운 조성 등의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산업의 주요 콘텐츠로 꼽히는 것이 문학, 음악, 미술, 연예 등이다. 특히 문학 자산이 풍부한 창원은 1990년 산호공원에 시의 거리를 조성하고 2008년에는 시의 도시를 선포하기도 했다. 경남문학관을 비롯해 마산문학관, 이원수문학관, 김달진문학관도 건립, 운영되고 있다.

    이미 최치원으로부터 이원수, 이은상 등 많은 문인들의 문학 세계가 문화 예술 콘텐츠로 계속 개발되고 있다. 문학이 우리 창원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에 때문이리라.

    사랑과 비운의 지하련

    우리는 다시 지하련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지하련은 근대문학사에서 매우 뛰어난 작가임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성과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창원의 숨은 보물이다. 그의 문체는 인간 심리를 세밀히 그려낼 뿐만 아니라 1930년대 말기 전향문학가들의 이념 갈등을 잘 그려냈다.

    또 그의 남편이자 당대의 풍운아였던 한국근대문학의 대가 임화를 잘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문학사적인 가치가 충분하다. 더구나 그가 쓴 <결별>, <체향초>, <도정> 등은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창원(마산)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하련은 거창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이사한 창원군 웅남면 월림리 136번지, 마산부 상남동 149번지에서도 살았고, 특히 오빠가 살았던 산호리 562번지는 그가 1936년 신혼을 보낸 곳이자 결핵으로 병약한 몸을 달래면서 소설을 쓴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하련이 임화와 신혼을 차린 같은 해에 <고향의 봄>을 지은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최순애와 신혼을 보냈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니. 이들 사이에 어떤 예술적 교감이 있었던 것일까. 일제 지배하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팽배했던 마산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이들 눈으로 그린 식민지 마산의 근대적 모습은 또 어떤 분위기를 하고 있었을까.

    숨은 보물, 창원문화예술의 콘텐츠 지하련

    폐가의 화재(火災)는 문화 예술의 매우 귀한 자료이자 콘텐츠가 될 한 문학가의 세계를 우리 앞에 떠올려 주었다. 그럼에도 창원시의 미온적 태도는 그 삶의 터며, 겨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80년이나 된 지하련의 집을 천천히 낡아 소멸되게 내버려두고 있다. 어둑신하고 음습한 숲의 그늘에서.

    명형대 (경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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