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모발 - 김춘수
- 기사입력 : 2016-09-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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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가고
네 모발을 생각한다.
가을이 와서 낙엽이 지면
네 모발은 바다를 건너
더욱 깊이 내 잠 속으로 오리라.
바람이 이제
어제의 제 그늘을 떠나고 있다.
분꽃 하나가 바람을 따라 흐르고 있다.
하늘 높이 눈을 뜨고 불리우며
흐르고 있다.
마침내 깊이깊이
이 세상의 분꽃 하나가
하늘에 묻히리라.
☞ 지긋지긋하던 폭염 겨우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저녁을 몰고 온다. 달 뜰 무렵부터 천천히 끓기 시작하는 풀벌레소리. 가을이다.
여름은 결국 사라진다. 젊음의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들. 기름진 사자의 갈기 같은, 늑대가 사는 침엽수림 같은 머리카락들. 군데군데 흰머리 돋아나는 생의 가을 속으로 사라진다. 그 여름. 모발 치렁치렁한 사랑이 한 영원한 약속도 시간이 흐르면 시든다. 시든 붓꽃처럼 떨어져 바람 따라 흘러 바다를 건너가 버린다.
바다를 건너간 젊은 날의 사랑, 다시 바다를 건너와 잠 속에 스며드는 깊은 가을밤도 있으리라. 그러나 언젠가는 꿈속에서도 사라질 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이중도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