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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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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발 - 김춘수

  • 기사입력 : 2016-09-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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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가고

    네 모발을 생각한다.

    가을이 와서 낙엽이 지면

    네 모발은 바다를 건너

    더욱 깊이 내 잠 속으로 오리라.

    바람이 이제

    어제의 제 그늘을 떠나고 있다.

    분꽃 하나가 바람을 따라 흐르고 있다.

    하늘 높이 눈을 뜨고 불리우며

    흐르고 있다.

    마침내 깊이깊이

    이 세상의 분꽃 하나가

    하늘에 묻히리라.

    ☞ 지긋지긋하던 폭염 겨우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저녁을 몰고 온다. 달 뜰 무렵부터 천천히 끓기 시작하는 풀벌레소리. 가을이다.

    여름은 결국 사라진다. 젊음의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들. 기름진 사자의 갈기 같은, 늑대가 사는 침엽수림 같은 머리카락들. 군데군데 흰머리 돋아나는 생의 가을 속으로 사라진다. 그 여름. 모발 치렁치렁한 사랑이 한 영원한 약속도 시간이 흐르면 시든다. 시든 붓꽃처럼 떨어져 바람 따라 흘러 바다를 건너가 버린다.

    바다를 건너간 젊은 날의 사랑, 다시 바다를 건너와 잠 속에 스며드는 깊은 가을밤도 있으리라. 그러나 언젠가는 꿈속에서도 사라질 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이중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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