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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살바도르 달리의 12면 축구공- 박형주(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16-09-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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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말에 파리에서 세드릭 빌라니 교수를 만났다. 2010년 필즈상을 수상한 석학이고 앙리 푸앵카레 수학연구소장이다. 항상 나비넥타이 정장 차림에 자신만의 거미 브로치를 단다. 깊이 있는 수학 논문과 베스트셀러 대중서를 동시에 써내며 학자의 스테레오타입을 거부하는 이단아다.

    그를 만난 곳은 실험 음악가 파트리스 물레의 작업실이었다. 영화 매드맥스 세트장 같은 느낌의 커다란 지하 공간에서 물레는 신개념 악기를 설계하고 만들며 연주하는 작업을 한다. 음악에 대한 학습이나 훈련 없이도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 작업실에서의 연주는 좋은 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에 가깝다. 자폐증이나 신체적 부자유가 있는 아이들이 이런 악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을 하고 치료받는 현상이 관찰되는 바람에 새로운 활력을 띠게 됐다. 작업실에는 정신과 의사인 여성 인지과학자도 방문 중이었다. 음악가와 수학자 그리고 인지과학자가 무슨 공통의 관심이 있을까. 시각적 정보를 음악으로 전환하는 비법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치유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까지 동원된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의 1955년 대표작인 ‘최후의 만찬’에 나타나는 여러 직선들의 길이는 황금비를 이루고, 배경에는 큼지막한 정십이면체가 보인다. 똑같은 모양의 오각형 12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각진 축구공이 예수님 뒤에 보이다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뜻인가.

    얘기는 고대 아테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모순과 오류투성이의 현세 너머에 무결한 피안의 세계가 있다고 여겼다. 피안을 들여다보는 열쇠를 기하학에서 찾고는 ‘기하학은 진리로 가는 영혼을 이끌며 철학의 정신을 창조한다’고 가르쳤다. 아테네에서 제자들을 키우던 아카데미 입구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놓았다. 이 엄포에 주눅 들지 않은 용감한 사람들 덕에 플라톤 아카데미는 나중에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서도 장장 900년 동안 존속했다.

    그래서 ‘플라톤적’이라는 표현은 ‘이상주의적’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지적 사랑의 의미로 쓰이는 ‘플라토닉 러브’가 한 예다.

    각 면이 정삼각형인 피라미드를 연상해보라. 바닥까지 쳐서 총 4개의 면을 갖는 정사면체다. 주사위를 연상해보라. 각 면은 똑같은 정사각형이고 총 6개의 면을 갖는 정육면체다. 각 면이 똑같은 정다면체는 놀랍게도 우주를 통틀어서 이 두 개 외에,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밖에 없다. 이 사실은 수학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고 신비한 다섯 개의 입체는 플라톤 학파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플라톤의 4원소론에서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원소인 불, 흙, 공기, 물이 각각 4개의 정다면체에 해당한다. 여기 정십이면체가 빠졌는데 후대 사람들은 이를 미지의 제5원소로 불렀다. 플라톤은 신이 우주의 별자리를 배치하는 데 정십이면체를 사용했을 거라 했고,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걸 에테르라고 불렀다. 살바도르 달리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의 성스러움을 신의 섭리를 상징하는 제5원소로 표현했고, 황금비를 도처에 배치해서 미적 완결성을 담아내려 한 것이다. 이런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예술가는 도처에 출몰한다. 간딘스키와 초기 피카소의 작품에서도 구조와 명징성의 연계와 실험이 확연하다. 수학은 초중등 교육체계에서 합리적 생각의 능력을 연습시키는 도구지만, 분야를 넘나드는 음악가의 치유실험과 미술가의 상징실험에 영감을 주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아주대 석좌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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