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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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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문화콘텐츠로 살려내야 할 다호리 유적-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6-09-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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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새도래지로 널리 알려진 주남저수지는 찾으면서도 지척에 있는 다호리 유적지에는 도통 눈길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역사학계를 어마지두 놀라게 했던 고대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알고서 찾아간대도 다호리 마을 뒤쪽에 자리한 약 50미터 높이의 나지막한 구릉만 보이는 소박한 광경뿐이라 눈요깃감으로는 주남저수지의 풍경에 비해 성이 차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곳은 기원전부터 한반도에 문자문명시대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상징공간이다. 주남저수지가 물빛의 경관풍경을 자랑한다면 다호리 유적지는 고대사의 심상풍경을 연출하는 곳이다.

    다호리 유적은 서력 기원 직전의 원삼국시대와 가야시대까지 여러 시기에 걸쳐 조영된 무덤군을 말한다. 이 유적지는 80년대까지 학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다가 ‘도굴꾼의 실습장’이라 불릴 정도로 도굴에 의한 유물 피해를 극심하게 입은 다음에야 다시금 장소의 존재감을 알렸다. 이에 서둘러 국가 차원에서 현장발굴 1차 조사가 시작된 때가 1988년 1월의 일이었고, 발굴단원의 손길을 통해 제1호 고분에서 이천년 넘게 간직했던 역사의 비밀이 고스란히 밝혀지게 됐다. 원삼국시대의 이른 시기에 사용된 통나무목관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발굴되었고, 부장품을 따로 묻었던 요갱(腰坑)에서는 당시까지 출토되지 않았던 청동기, 철기, 칠기 등의 새로운 유물들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발굴을 통해 얻은 성과들은 실로 그 의의가 대단했다. 원삼국시대 초기의 철기문화의 내용과 함께 철을 매개로 한 국제교역을 했던 ‘갈대밭 속의 나라’가 존재했다는 것, 목관묘의 실체를 통해 당시 장례제도와 무덤 주인의 신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 출토된 거의 모든 제품마다 독창적인 기법으로 옻칠을 입혀 그 시대의 칠공예문화(漆工藝文化)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는 것 등등 많은 내용이 새로이 밝혀졌다. 출토품으로는 동검·동경 등의 청동기 유물, 철검·쇠도끼·꺽창 등의 철기 유물, 칼집·활·화살·부채 등의 칠기 유물 등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문제적인 유물은 바로 붓 다섯 자루와 삭도(削刀)의 출현이었다. 이 유물들은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한반도에서 이미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명해준다. 당시 ‘갈대밭 속의 나라’에서는 철을 교역할 때 물품 명칭과 수량 및 가격을 적시한 문서작성이 필요했을 것이다. 붓으로는 목간 같은 것에 글을 써서 문서를 만들었고 삭도로는 잘못 쓴 글씨를 깎아내면서 지우개처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국제적인 교역에 참가했던 상층부의 인물들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와 관련해 함께 출토된 중국 동전인 오수전(五銖錢) 역시 중국과 왜와의 교역을 벌여 부를 쌓으면서 이를 토대로 고대국가로 발돋움해가는 과정과 문화교류의 역동성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렇게 중요한 의의를 지닌 다호리 유적으로 인해 창원은 문자의 꽃송이가 처음 벙글었던 찬란한 문명의 땅이 됐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시원에서 ‘변한’이란 이름의 아우라로 서려있는 빛나는 자부심의 내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최근 다호리 유적이 품은 자랑스러운 상징성과 상당한 인문학적 의미에 대해 새롭게 값어치를 매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창원예총 박금숙 회장은 다호리 유적의 유·무형적 가치에 여러 예술 갈래와의 결합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만들려는 노력을 꾸준하게 벌이는 중이다. 그 첫 번째가 문화적 형상성을 얻기 위해 다호리 유적을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구조화시키면서 또 다른 문화매개체로 연결하려는 실천적 움직임이다. 지금은 소박하지만 박 회장이 정성스레 그려나가는 문화콘텐츠의 밑그림은 머지않은 뒷날 우리 땅과 문자의 은유인 다호리 유적과 만나서 아름답고 장엄한 축제의 도가니로 발전할 미래의 가능성이다.

    우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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