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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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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박태영의 클래식 산책 (4) 이야기가 있는 음악

셰익스피어 희곡과 사랑이 명곡을 낳았다
알고 들으면 더 재밌는 명곡 속 감춰진 이야기(下)

  • 기사입력 : 2016-09-0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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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가 있는 음악’ 하편에서도 작곡가와 곡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본다. 상편에서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소개한 바 있다.

    이번 편에서는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과 브람스 교향곡 제1번(Symphony No.1, Op.68)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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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모차르트’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19세기의 모차르트’라는 찬사를 받는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은 15세가 되기도 전에 이미 4편의 오페라, 여러 실내악곡과 피아노곡, 협주곡을 작곡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를 집으로 초청해 연주회를 열었고, 그의 작품을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던 집안 분위기 덕분에 멘델스존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악기들의 음색과 효과에 대해서 이미 정통할 수 있었다.

    ▲‘한여름 밤의 꿈’을 꾸기 시작하다

    1826년 멘델스존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나서 “내일부터 나는 ‘한여름 밤의 꿈’을 꾸기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완성한다. 멘델스존이 꿈꾸었던 ‘한여름 밤의 꿈’은 어떤 꿈이었을까.

    서곡의 시작은 두 대의 플루트로 시작되며 오보에, 바순, 호른의 소리가 차례대로 어우러지면서 ‘한여름 밤의 꿈’의 배경인 요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바이올린 주자들은 요정의 날갯짓을 표현이라도 하듯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분주한 소리를 낸다. 요정의 날갯짓처럼 가벼운 바이올린,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흉내낸 금관악기 소리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잘 표현해준다.

    독일의 작곡가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도 이 곡을 듣고 “마치 요정들이 직접 연주를 하는 듯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멘델스존이 처음으로 ‘한여름 밤의 꿈’ 작곡을 했을 때는 서곡으로만 작곡됐다. 그후 몇 곡의 음악이 더 추가되며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여름 밤의 꿈’이 완성된 것은 무려 17년 후인 1843년이다. 멘델스존은 17년 전에 작곡했던 곡을 완성시키며 ‘한여름 밤의 꿈’을 명실상부한 최고의 극음악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새로 작곡해 덧붙인 극음악은 단순히 연주회용이 아니라 연극 공연을 위한 용도였기 때문에 독창과 합창이 더해져 극적인 표현이 강조됐으며, 성악곡의 가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있는 대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서곡 다음으로 오는 ‘스케르초(scherzo)’는 목관악기의 리듬으로 시작되며 마치 요정 세계에 있는 듯 가볍고 발랄하며 경쾌하다. 이후 요정의 숲에서 벌어지는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는 ‘요정들의 행진곡’, 아리아 ‘얼룩무늬 뱀, 두 대의 혀로’, ‘멜로드라마’, ‘간주곡’, ‘녹턴’, ‘결혼행진곡’, ‘팡파르와 장송행진곡’, ‘베르가마스크’에서 생동감있게 표현되며, 마지막 ‘피날레’에서 서곡의 시작을 알렸던 목관의 화음이 다시 나오면서 멘델스존의 극음악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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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 나타났다!’ 브람스 교향곡 제 1번

    작곡가이자 잡지사 사장이었던 슈만은 자신의 잡지를 통해 천재적인 음악가 두 명을 발굴해낸다. 바로 쇼팽과 브람스이다. 슈만 덕분에 젊은 나이에 음악계에 데뷔하게 된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이때부터 작곡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태워버리거나 찢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아마 세간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돼 있었기에 좋은 곡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그런 노력과 고집으로 인해 오늘날 독일음악의 3대 거장(바흐, 베토벤, 브람스)으로 불리게 된 것이 아닐까. ‘음악계의 산타클로스’라고 불릴 만큼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은 브람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특징 중 하나이다.

    브람스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고, 음악계에서 대표적인 ‘일편단심 짝사랑남’으로 통한다. 브람스가 일평생 흠모했던 클라라 슈만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슈만의 아내이다. 스승이나 다름없는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간 브람스의 음악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대변하듯 유달리 고독하고, 한편으로는 자유롭다. 브람스가 작곡한 곡에는 ‘클라라에게’라는 현악 6중주의 곡이 있는데 그중 유명한 악장이 2악장이다. 브람스는 이 두 번째 악장을 특별히 클라라 슈만에게 보냈고, 전곡을 피아노 연탄으로 편곡해서 그녀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21년간의 노력과 고심의 산물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은 브람스가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에 감명을 받아 무려 21년 동안 고심하고 노력해 만든 그야말로 브람스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는 곡이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고독하고 우수 어린 선율과 쓸쓸한 분위기가 곡 안에 녹아 있다.

    특히 ‘운명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1악장의 도입부가 유명한데, 현악기의 비장한 선율 사이로 들려오는 팀파니가 운명의 발자국 소리와 같이 느껴진다. 4악장은 이와 대조를 보이는데, 환희를 주제로 해 벅찬 환희로 가득 찬 듯하다. 이처럼 도입부터 종결까지 탄탄한 형식과 구성이 돋보이는 이 곡은 베토벤 이후 쇠퇴했다고 느꼈던 독일 교향곡의 자존심을 살려준 걸작이다.

    22세의 브람스가 43세에 교향곡을 발표하기까지 그를 괴롭혔던 건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다. 언제나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을 의식하며 작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람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베토벤을 ‘거인’이라고 말하며 “거인이 내 뒤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게. 그때 그 기분을 자네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걸세”라고 적었다고 한다. 이 편지는 브람스가 얼마나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을 의식하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베토벤의 10번 교향곡? 그러나 분명히 브람스의 1번 교향곡!

    처음의 고통을 극복하고 환희에 이르러 곡이 끝나게 되는 구성은 베토벤 교향곡의 구조와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한스 폰 뷜로우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제10번’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는 브람스의 교향곡이 초연됐을 때 “우리는 드디어 제10번 교향곡을 얻었다”고 감격했다는 일화가 있다. 불멸의 9개 교향곡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교향곡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리스트와 바그너가 전통에서 탈피한 새로운 낭만주의 음악의 열풍을 한참 일으키고 있을 때에도, 브람스는 독일 전통의 고전주의 음악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는 평가는 베토벤을 존경했던 브람스에게도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결국 마지막 악장의 몇 마디가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과 비슷하다는 말까지 나오자 브람스는 분노했다. 브람스가 베토벤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베토벤을 의식해 곡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히 브람스의 교향곡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과 분위기가 있었고, 그의 스타일로 변화된 것이었다.

    브람스 교향곡이 간직한 내면적 아름다움과 특유의 분위기는 베토벤의 외향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4악장에서 모든 갈등이 사라지는 듯 연주되는 호른의 선율은 조용하며 부드럽고 상냥하다. 베토벤이 운명교향곡 4악장에서 화려하고 자극적인 트럼펫 팡파르로 환희와 승리를 표현했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표현이다. 또 브람스는 베토벤보다 훨씬 더 서정적이고 은근하다.

    실제로 브람스가 교향곡 제1번 4악장의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했던 호른의 테마에는 클라라와의 개인적인 사연이 담겨 있다.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보냈고, 일평생을 흠모했던 클라라 슈만이 사망한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난다. 그에 대해 누군가는 후기낭만주의 시대에 고전주의를 지켜온 원칙주의자라고 하고, 누군가는 성격이 괴팍하고 고지식했던 작곡가라고도 하며, 누군가는 일평생 짝사랑만 하다 생을 마감한 작곡가라고도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칙주의자에다 고지식한 성품이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형식이 살아 있는 교향곡을 듣게 되는 행운을 가지게 됐으며, 일평생을 한 사람만 흠모하며 살아왔기에 그의 곡 속에 녹아 있는 그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고독함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작곡가의 곡보다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작곡한 브람스의 곡을 그와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혹은 브람스의 인생을 생각하며 한 번쯤 들어보길 바란다.

    정리=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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