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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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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추석 밑, 월급 못받는 고통- 이상목(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6-09-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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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졸업 전후 2년여 공장근로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졸업 전에는 기능사자격증을 조기 취득하고 실습생 신분으로 부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했다. 졸업 후에는 서울 구로구 독산동 구로공단 입구 간판제작회사를 다녔다. 입대를 앞둔 20대 초반으로 한창 기운이 샘솟을 때라 고된 일도 곧잘 견뎌냈다.

    시골에서 자라선지 노동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먼지 자욱한 연삭실에서의 작업도 재미있게 해냈다. 자동차부품 도장실에서는 페인트 먼지 자욱한 열악한 환경도 견뎠다. 서울에서는 육중한 철판을 맨몸으로 옮기는 일을 했지만, 감내할 수 있었다. 당시는 ‘80년 민주화의 봄’과 함께 극심한 정치·경제적 혼란기로 기계공고를 나와도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든 때였다. 그래서 호불호를 떠나 내 일터가 있다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컸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다가오는 월급날엔 사정이 달랐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제때 받는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영세하다 보니 체불은 일상이었다. 회사 사정을 백분 이해한다 해도 기초생활급을 제때 못 받으니 삶의 질은 엉망이었다. 군 입대를 핑계로 밀린 임금을 포기하고 낙향하면서 그 고통을 스스로 끊어냈지만, 사무친 인격적 비애는 여전히 상처로 남았다.

    새삼 씁쓰레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우리 산업현장에서의 ‘임금체불 전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추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보도되는 체임 근로자들의 절규가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누적 체불액이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는 1조4000억원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올 들어 임금체불로 고용부에 진정서를 낸 근로자만 자그마치 21만4052명에 달한다. 지난해보다 그 숫자가 12%나 급증했다니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더구나 8월 말까지 누적 체불액이 80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역대로 지난 2009년과 2014년 두 번뿐이어서 올해의 대한민국 경제 현주소가 짐작된다. 아울러 제때 일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가슴이 아프다.

    올해 임금체불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조선업 구조조정 등으로 대금을 받지 못한 하도급 업체가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라 한다. 하지만 개중에 경영사정이 악화됐을 때 고의로 임금을 체불해 개인빚을 갚거나 회사자금을 빼돌려 다른 회사를 세우는 악덕 사업주의 부도덕도 한몫했다니 개탄스럽다. 학계에서도 올해 체불임금이 늘어난 것은 경기악화와 구조조정 탓이 크지만 ‘나만 살면 된다’는 사업주의 도덕적 일탈도 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임금체불액이 경제규모가 훨씬 큰 일본의 10배에 달하는 등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하니 그 원인을 불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금은 인격이다. 제때 받지 못할 때 느끼는 비애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때문에 임금체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문화에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부 사업주의 도덕 일탈행태에 대해선 상응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

    이상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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