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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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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48기 안대훈 (3) NC, 너에겐 미안하지만

  • 기사입력 : 2016-09-19 14: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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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누군가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면, 나는 빨리 끝내는 쪽의 손을 들어주겠다.
     
    스포츠는 종종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린다. 특히 야구가 그러하다. 야구는 여타 스포츠보다 점수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는 주자가 1루 2루 3루 그리고 홈베이스를 밟아야만 점수가 난다. 주자가 출루해 있어도 다음 타자가 적시타를 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야구는 한 명의 개인기로 점수를 내기 어려운 스포츠라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기가 8회, 9회에 접어들면 우리 팀이 역전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해진 결과를 미리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반전은 이처럼 기대가 확 꺾인 상황에서 일어나야 감동이 큰 법이다. 야구의 묘미가 반전에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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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시작 전 NC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마치 야구를 잘 아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나는 야구를 잘 모른다. 실은 스포츠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운동 잘하게 생겼다, 라는 말만 이따금 들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야구장에 가게 됐다. 문화체육부 동행교육 중 야구 담당 선배를 따라 마산야구장에 간 것이다. 그곳에서 접한 열기는 대단했다. 현장 야구는 브라운관에 비춰지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NC팬들은 경기 내내 서서 응원했고, 현장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야구 문외한인 나조차 그 열기에 휩쓸려 심장이 뛸 정도였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런 응원석의 환호작약(歡呼雀躍)한 열기에 뒤지지 않는 곳이 야구장에 한 곳 더 있다. 바로 기자실이다. 단, 차이가 있다면 기자실의 열기는 고요하다. 선배를 비롯한 타 언론사 야구 담당 기자들은 경기를 보는 내내 노트북 자판기를 두들기거나, 자료를 뒤적이느라 바쁘다. 야구 경기가 끝나는 대로 기사를 송고해야하기 때문이다. 속보를 내기 위해, 또는 마감시간을 준수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개 야구 기자는 시합 중 전체적인 기사를 미리 작성해 놓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승패의 가닥이 잡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은 늘 있기 마련이다. 지난 6일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그럴 뻔했던 경우다. 1회초부터 점수를 내주며 부진하던 NC는 4회말, 5회말, 6회말 연달아 점수를 내며 역전했다. NC가 1점차로 앞선 상황은 8회말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대부분 NC의 승리를 점쳤다. 선배도 그런 방향으로 기사의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NC가 9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한화 대타 신성현에게 솔로홈런을 맞았다. 동점이 돼버린 것이다. 한화 팬들은 환호했고, NC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내가 야구 담당 기자였다면 이 상황이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기껏 쓴 기사를 다시 갈아엎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마감시간은 경기가 길어질수록 더 촉박하게 다가온다. 마감에 쫓기는 기자 입장에서 연장전은 곤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선배처럼 전문기자들은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언제든 대처가 가능하다. 하지만 미숙한 나에게 반전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일 뿐이다. 야구장에서 처음 느낀 흥분을 전부 고갈시킬 정도로 피곤한 손님이다. 다행히 NC는 9회말 손시헌의 끝내기 안타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날 경기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반전이 싫다. 연장전은 피곤하다. 야구야 예측대로 흘러가 빨리 끝나줘. NC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날 경기에서 이기고 있는 팀이 NC가 아니라 한화였다면 나는 아마 한화를 응원했을 것이다. 워워. NC팬 분들 진정하세요. 화내지 마세요. 손에 든 닭다리도 내려놓으시고. 던지면 위험해요. 저는 NC가 이기고 있으면 NC를 응원합니다. 단지, 빨리 끝내는 쪽 편일뿐이에요. 에헤이. 닭다리 내려놓으시라니깐. 그리고 NC팬 여러분, 현재 경남신문에서 야구를 담당하시는 모 선배님은 NC팬인듯 하니 기분 풀어요. 그 선배의 페이스북을 보니 취재를 하지 않는 날에는 팬 모드로 전환해 NC를 응원하던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 화 푸시고 다음 경기에서도 뜨거운 열정! 기대하겠습니다.
     
    <야구장-번외편>
    이튿날(7일) 나는 다시 야구장으로 갔다. 오늘은 반전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이노스(DINOS)카페에서 선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내 동공에 지진이 발생했다. 미녀 둘이 카페에서 나와 내 곁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두 눈이 그녀들을 따라 돌아갔다. 목도 돌아갔다. 몸은 돌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이다. 나는 쉬운 듯 쉽지 않은 남자다. 그녀들을 향한 시선의 끝에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그녀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게로 왔다. 선배님. 방금 보셨습니까. 연예인만큼 예쁜 야구팬들이었습니다. 선배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쟤가 치어리더계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김연정이야. 아. 일찍 말해주지 않은 선배가 다소 야속했다. 치어리더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팬을 사칭해 같이 사진이라도 찍었을 텐데. 이후 야구장 기자실에서 선배 이름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니 1년 동안 치어리더 3명(야구 2명, 농구 1명)을 인터뷰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 것일까. 나도 나중에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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