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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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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꾀꼬리, 까마귀를 이길까- 이문재(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6-09-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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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이란 게 그렇다. 계속 주거나 받으면 둔감해진다. 으레 주는 것이라 여겨지고, 받는 입장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한순간에 ‘뚝’ 끊거나 끊어지면, 안 줘서 찝찝하고 못 받아서 서운하다. 간혹 무슨 곤궁한 사정이 생겼나 하고 걱정하는 선한 마음들도 있지만, 세상 인심이란 게 남의 사정에 그렇게 너그럽지가 않다. 많은 선물들이 오가는 추석 명절이 지났다. 굳이 양적인 비교를 해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받은 것만 놓고 볼 때 지난해보다는 많이 줄었다. 개수도 그렇고, 내용물도 저렴해졌다. 섭섭해할 일도 아니고, 또 섭섭함도 없었다. 나 자신의 변화도 있겠지만, 경기불황에다 멀쩡했던 일자리가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마당에 무슨 선물이란 말인가. 되레 보내지 않은 것이, 받지 않는 것이 고맙고 편하게 느껴졌다.

    선물과 뇌물(賂物)은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것이다.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다. 기본적으로 선물은 호의를 담보로 한다. 자신에게 어떤 형태로든 좋은 감정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라고 물건을 건네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뇌물과 가깝다. 선물 중에는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순수한 마음으로 전하는 경우도 있다. 호의를 갖든, 또 그렇지 않든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데 무게를 두는 경우다. 그래도 바닥에는 자신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길 기대하는 미련을 완전히 들어내지는 못한다. 선물이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뇌물과 혼동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선물이나 뇌물의 효과는 대단하다. 꾀꼬리와 까마귀의 노래 대결에서 까마귀가 이겼을 정도다. 여기서 와이로(蛙利鷺)가 등장한다. 개구리 와(蛙), 이로울 이(利), 백로 로(鷺)다. 정사인지 야사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규보와 관련된 얘기다. 암행을 나갔던 임금이 이규보의 대문 앞에 써붙여 놓은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한이다)을 발견하고 그 뜻을 물었다. 이규보 왈,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 대결을 하기로 했는데 까마귀는 실력을 갈고닦는 대신 심판을 맡은 백로에게 개구리를 뇌물로 갖다 바쳐 승리를 했다는 것이다. 실력은 분명 있지만 돈도 배경도 없어 과거에 번번이 낙방해 초야에 묻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빗댄 푸념이었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이 곧 시행된다. 이제 선물이냐, 뇌물이냐를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 5만원이 넘으면 뇌물이고, 그 이하면 선물로 봐도 될 것 같다. 물론 경우에 따른 여러가지 변수도 있지만, 일단은 액수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됐다. 사람간의 정(情)이나 도리(道理)를 야박하게 됫박질한다는 불만도 있지만, 그간에 행해졌던 부정부패를 보면 자업자득이다. 선행학습인지 이번 추석에 5만원 미만의 선물 세트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유통업계에서는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실속·알뜰형 상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앞으로 진짜 선물에는 정을 더욱 많이 담아야 할 것 같다. 돈으로 다 담지 못하는 고마움을 전하려면 정을 꾹꾹 눌러야 하지 않을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정성(精誠)을 전달하고 가늠하는 지혜를 가져야 낭패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참에 까마귀도 백로도 사라지는 그런 사회를 기대해 본다.

    이문재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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