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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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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조율이시(棗栗梨枾)- 대추·밤·배·감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09-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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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연휴 3일 바로 다음에 토요일 일요일이라, 연휴가 5일이 됐다. 여기에다 월·화요일 휴가를 신청하면, 9일을 놀 수 있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과연 인천공항은 이용객이 100만명에 이르러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추석연휴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을 보고, 연세가 든 분들은 “조상 제사는 안 모시고 어디를 싸다니느냐?”라고 못마땅해하고, 젊은 사람들은 제사보다는 자기 여행 계획을 실천해 옮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고 여행을 가면 그래도 마음의 갈등을 많이 겪는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등장한 것이 ‘제수(祭需)세트’ 상품이다. 제사에 필요한 음식은 물론 향, 초, 축문, 지방까지 다 갖춰져 있다. 그 세트 가방만 들고 가면 세계 어느 나라, 어디에서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인터넷 등에는 제사 음식 차리는 법, 제사 지내는 순서 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이 여럿 올라 있다.

    그런데 대부분이 근거 없는 엉터리가 많은 것이 문제다.

    예를 들면, 제사에 쓰는 과일 가운데 대추, 밤, 배, 감 순서로 놓는 이유를, “대추는 씨가 하나이기 때문에 임금을 나타내고, 밤은 세 톨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삼정승을 나타내고, 배는 씨가 여섯 개 있기 때문에 육조(六曹) 판서(判書 : 장관급)를 나타내고, 감은 씨가 여덟 개 있기 때문에 팔도(八道) 감사(監司)를 나타낸다. 후손들 가운데서 훌륭한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데서 이런 과일을 쓴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이런 기록은 어느 책에서도 본 적이 없다. 또 민간에서 후손들 가운데서 임금이 나오기를 바란다면 반역에 해당되는데, 왕조시대에 나라에서 그냥 두었겠는가?

    우리나라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진설도(陳設圖)를 보면 맨 앞줄에 그냥 ‘과일’이라고만 적혀 있고, 조선 후기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지은 <사례편람(四禮便覽)>의 진설도에도 그냥 과일로만 나와 있다. 자기 고장에서 나는 과일을 올리는 것이지,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된다는 것은 없다.

    홍동백서(紅東白西 : 붉은 것은 동쪽에, 흰 것은 서쪽에), 어동육서(魚東肉西 : 생선은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라고 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낸 말이고, 우리나라나 중국의 옛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 말들이다.

    <주자가례>나 <사례편람>의 진설도를 보면, 맨 첫 줄에는 과일, 둘째 줄에는 나물이나 반찬 종류, 셋째 줄에는 생선, 적, 떡 종류, 마지막 줄에는 밥과 국, 수저 등의 순서로 진설돼 있다. 대체로 이런 순서로 적절하게 놓으면 되지, 진설하는 것을 가지고 조상 제상 앞에서 다투는 것도 옳지 않다.

    *棗 : 대추 조. *栗 : 밤 률(율).

    *梨 : 배 리(이). *枾 : 감 시.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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