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십일월의 긴 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 술! 술 곁에는 늘 느낌표가 붙어 있었다. 외할아버지 탁주 심부름하다 주전자 입에 대고 홀짝거리던 술과, 대학시절 이후로 지독한 ‘열애’를 했었다. 술이 청춘을 삼켜 버린 것이다. 만삭이 된 술의 배를 갈라 보면, 내 청춘의 뼈다귀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을 것이다.
술과 물만 고집하던 마초 같은 생활을 얼마 전에 청산한 후, 가끔씩 차를 마신다. 달나라에 온 것 같던 찻집도 제법 익숙해졌다. 기모노 입고 단정히 꿇어앉은 다도(茶道) 근처에는 못 가더라도, 수수한 소반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한다. 새로 사귄 이 소탈한 친구는 ‘독재’와는 아예 거리가 멀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가까이 할수록 ‘내가’ 더 또렷이 돋을새김된다. 조금 더 사귀다 보면, 자연스레 ‘형’이라 부르게 될 것 같다. 다형(茶兄)! -시인 이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