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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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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길 위에서- 최미선(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6-09-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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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길을 나선다. 100리 남짓 거리를 매일 오가는 게 일상이 된 지도 어느새 20여년이 지났다. 처음엔 남동쪽으로 10여년 이상을 오갔고, 이제 서북쪽으로 출퇴근을 하게 된 것도 15여년에 가깝다.

    길 위의 풍경은 우선 자동차의 긴 행렬이다. 길고 긴 자동차의 행렬은 노마드(nomad)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 유목민들의 울타리 없는 삶의 질주처럼 보인다. 불모지를 향해 달려 나가는 유목민들처럼 기존의 환경에 정주(定住)하지 않으려는 달음박질, 정주(定住)의 영토로부터 탈주하는 유목민들의 이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에게 떠남은 어쩌면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머무는 것은, 정지된 것은 안주이고 이것은 때로 영혼의 죽음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야기 속의 모든 주인공은 길을 떠나는 것이다. ‘바리데기’는 생명수를 찾아서 세상의 끝에까지 가 보았고,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일행들은 칠십 리 밤길을 열이레 달빛을 받으며 내처 걸었다.

    노마디즘(Nomadism)은 정해진 형상이나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정주민(定住民)의 고정관념과 위계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사전(辭典)에도, 정해진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이동하는 것이 노마디즘(Nomadism)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공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정신의 이동, 가치의 이동을 추구하는 것이 노마디즘이다.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척박한 환경을 옮겨 다니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꾸어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에서도, 문학에서도 익숙한 거주의 자리에서 벗어나 유목민처럼 낯선 지역으로 내몰아 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낯선 곳에 던져져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권하고 있다. 정신의 떠남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현대인들은 평원을 지나고, 사막을 지나고, 대륙을 건너면서 주어진 곳 어디에서든 일을 하던 유목민들처럼 살고 있다. 거의 대부분 손 안에 디지털 기기를 들고 다니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하고, 일상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노마드(nomad)시대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해진 형상이나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바람이나 구름처럼 이동하며 정주민의 고정관념과 위계질서에서 벗어나는 노마디즘적인 사고방식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사항 있음’이 될 것이다.

    삶의 방식은 나날이 새롭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솔직한 삶의 모습은 어떠한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정주민의 위계적 정체성’, ‘배타적 정체성’은 우리들의 생활 영역 전반에서 더 노골화되고 굳건해져 가는 것은 아닐지 염려된다. 흔히 ‘갑질’이라는 말로 회자되는 온갖 형태의 꼴불견도 지금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얼치기 행동일 뿐인 것이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유의 여행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길 위에 서서 지금 서 있는 곳을 돌아보고 가야 할 길을 찾는 데 작은 암시라도 얻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뜻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최미선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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