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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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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생존기] 48기 안대훈 (4) 조금만 더!

  • 기사입력 : 2016-09-23 15: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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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뒷골목. 몰카(몰래카메라) 촬영 중이다. 손바닥으로 핸드폰을 가린 채, 검지와 중지만 벌려 대상을 찍고 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조금 더. 조금만 더!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습기자 교육차 서울에 왔다.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로 초빙된 현직 전문가 분들은 깊고 날카로운 강의를 하셨고, 교육 동기생들은 열정적이고 끈질기게? 술자리로 만들었다. 덕분에 편협한 관점과 간(肝)이 동시에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전율과 졸음이 함께 오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한 명 빠질 거면 다 같이 먹지 말자고, 외치던 우리 동기들. 제법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었다.
     
    그렇게 낮과 밤을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던 어느 날, 그 수업이 시작됐다. 내용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동영상 취재 보도'였다. 강사인 김현 EBS 교육뉴스부 부장은 우리들에게 50분가량 시간을 주며 취재영상을 제작하라고 주문했다. 강의 중 주어진 미션. 누구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강의실을 뛰쳐나갔고, 다른 누구는 자리에 앉아 계획을 세웠다. 나는 전자였다. 소변이 마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리현상에 떠밀려 현장으로 나갔다.

     
    메인이미지
    셀카인척 몰래 촬영했던 그날의 모습을 재연해 봤다.

    아이템을 찾기 위해 프레스센터 주변을 배회하다 건물 사이사이 구석진 골목마다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흡연자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그들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작다. 흡연자 스스로도 본인을 잘 옹호하진 않는다. 분명 담배가 본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건강상 피해를 줄뿐 아니라 냄새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들의 눈치를 보는 이유다. 그래서 담배를 피기위해 자신도 모르게 점점 후미진 골목길로 들어선다. 그들은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곳이나, 매캐한 연기가 나오는 환기구 옆 등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으로 모인다. (물론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개인 기호에 따른 선택일 뿐인 담배가 사람을 굉장히 초라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적으로 흡연부스, 흡연실 등 흡연시설을 많이 만들면 흡연자들이 덜 초라해질 것 같긴 하다)
     
    나는 흡연자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을 영상에 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시선에 노출된 흡연자들의 심정을 인터뷰해 전하고 싶었다. 취재가 편파적이었지만 골목에 삼삼오오 모인 그들의 초라한 뒷모습에 마음이 동했다.

    어렵사리 주제를 정했지만 진짜 문제는 촬영에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시민들의 시선을 영상에 담기 위해선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그런데 비흡연자들의 시선을 찍기 위해 다가가면 흡연자들을 보던 시선이 홱 돌아서 나를 향했다. 당혹스러웠다.? 그렇다고 저기 실례지만 이쪽 말고 저쪽 계속 보시면 되거든요. 저 신경 쓰지 마시구요, 라고 할 수도 없었다. 또 허락 없는 촬영을 반기는 이들은 드물었다. 이는 흡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신고하려는 파파라치로 오해 받기 십상이었다.
     
    핸드폰을 손으로 가리고 찍어보기도 하고, 셀카(셀프카메라)를 찍는 척하며 촬영을 하기도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완벽할 것 같은 아쉬운 순간이 계속됐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이미 다 돼 버렸고 그렇게 완성된 영상은 부족한 면이 많았다. 먼 거리에 찍힌 영상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업 중 강사도 한 대 맞더라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찍어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악한 영상이었지만 뉴스처럼 스탠딩(기자가 직접 출연해 멘트를 하는 것)도 넣었다. 스탠딩 촬영은 셀카로 했는데 아무리 뻗어도 얼굴, 목만 나오는 이유가 뭘까. 오늘따라 얼굴이 왜 이렇게 부은 걸까. 조금만 더 멀리서 찍으면 나을 텐데. 셀카봉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없는, 하지만 언젠가 생길, 후배들아. 교육 들으러 올 때 셀카봉 꼭 챙겨와. 이 강의가 그때도 있을지 모르지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그것뿐이야. 아! 그리고 한 대 맞더라도 더 들이대는 기자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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