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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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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 박한규(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 기사입력 : 2016-09-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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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 28일, 오늘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발효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입법 과정에서 이렇게 논란이 많았던 법이 있었나 싶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자는 대충 400만 명 정도. 논란의 양상을 보면 관심을 가지고 한두 번이라도 의견을 피력한 사람은 족히 1000만 명은 되어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이 법으로 인해 법 시행 이전 대비 행동에 제약을 받을 사람이 대상자의 1%나 될까?

    다양한 조직, 위치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1인당 매출액 세계 5위 기업 실무자, 직원 20명 남짓한 중소기업 CEO, 중앙부처 사무관, 국내 13위 그룹 계열사 팀장, 매출과 자산에서 30년 이내에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임) 지구상에 더 큰 회사가 탄생할 것 같지 않은 외국기업 한국법인 임원으로 일해 봤고 지금은 공공기관에서 간부로 일하고 있다. 이런 경험에 비춰 이 법이 일을 하는 데 있어 도대체 어떤 장애가 될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3만원 이상의 음식을 대접하거나 받거나, 5만원 이상의 선물을 주거나 받거나, 10만원 이상의 경조금을 주거나 받지 못해서 무슨 문제가 있을까? 자고로 음식, 선물, 경조금이라고 하는 것이 기준이 없으니 과한지 약소한지 부담되고 고민되는 것일 뿐. 상한선이 있으면 상한선이 최고 수준이니 꼭 필요할 경우 최고로 대접하면 뿌듯하고 최고로 대접받으면 고마운 일이다.

    국가 경제나 일부 업종에 끼칠지도 모르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논의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는 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있게 마련이고,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되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논의 과정에서 긍정적 측면에 대한 체계적이고 계량화된 주장을 접하지 못했다. 사회 전체가 아니면 적어도 대중매체가 중립성을 상실했다는 방증이라 본다. 일부 반사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도 마찬가지다. 그 업종의 번성이 떳떳하지 않은 관행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언젠가는 바뀌는 것이 온당한데 지금이면 왜 곤란한지 묻고 싶다. 이 두 논리가 부당하다면 우리 국가 경제나 그 업종은 부패한 토양에서나 번성할 수 있는 허약한 곰팡이에 불과하다.

    2009년 1인당 국민 소득 2만달러를 돌파한 이후 수년째 3만달러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현 사회 시스템의 물리적 한계라 본다. 2015년 권익위 조사에 의하면 일반 국민은 과반인 57.8%가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답했고 공무원은 극소수인 3.4%만이 그러하다고 답했다. 같은 해 국제투명성기구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를 37위로 평가했고, 세계경제포럼은 국가경쟁력은 26위로 평가하면서 ‘비정상적인 지급 및 뇌물’ 분야에서는 46위로, ‘정책결정의 투명성’ 분야에서는 123위로 평가했다.

    누구도 50km를 3시간 33분 이내에 걸을 수 없고 42.195km를 2시간 2분 이내에 달릴 수 없다. 더 빨리 가고 싶으면 타야 한다. 자전거든 자동차든 비행기든. 호미로 땅을 판다면 도달할 수 있는 깊이의 한계는 어느 정도일까? 한계에 도달하면 삽을 들거나 포클레인을 써야 한다. 근원적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감히 이 법을 우리나라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해방 이후 가장 의미 있는 시도 중 하나로 평가한다. 공정한 사회라야 높은 수준의 효율성과 효과성에 이를 수 있다.

    박한규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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