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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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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민주주의의 역설- 이택광(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16-10-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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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대선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예상대로 점입가경이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텔레비전 토론은 그동안 ‘미국 정치’에 대한 이상적 믿음을 흔들어놓는 것이었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박사논문에서 언급했던 ‘민주주의의 모범’은 이제 색 바랜 사진첩의 장면처럼 보이는 것 같다. 과연 이런 미국의 현실은 민주주의의 퇴보일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이 문제는 지금 상황이 민주주의의 퇴보인지 아닌지 논증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절차’나 ‘제도’로 환원해서 중립적인 메커니즘으로 파악하는 조류도 없지 않지만, 민주주의 자체가 어떤 이념일 수도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사실상 이념을 해체해서 상대화하는 작동에 가깝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선사한 희랍의 소피스트도 민주주의자들이었다. 당시 이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국가는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이런 민주주의자들조차도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타락’을 용납할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바로 이런 딜레마에 있다. 이 ‘타락’은 결과적으로 만인의 정치를 표방하는 어떤 민주주의도 반드시 ‘과두정’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트럼프 현상의 뿌리도 민주주의의 딜레마에 따른 것이다. 더 나아가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트럼프 현상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자유주의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토론은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너무도 준비가 잘 돼 있는 클린턴과 좌충우돌하는 트럼프는 참으로 대조적이지만, 그만큼 이 연출된 상황극은 미국에 여전히 민주주의가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미국 백인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는 트럼프와 중산층 리버럴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는 클린턴의 대결은 컴퓨터 게임이나 스포츠 경기처럼 흥미진진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언급을 누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면적이다.

    과연 지금 미국의 문제는 트럼프를 꺾고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지금 미국의 문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교육 받지 못한 무지한 백인 노동자들’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미국의 문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됐던 전후체제의 위기로 인해 빚어진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체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과 정책의 결과이다. 하나를 둘로 나눠 나머지 하나를 배제하는 방식은 역사적 공산주의 국가가 붕괴한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의 역할은 이슬람권으로 넘어갔고, 자유주의적 공론을 질식시키는 폭력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되풀이됐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타자를 잃어버린 이 전후체제의 ‘평화’에 결정적인 균열을 가한 사건은 9·11 테러였다. 작고한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런 테러를 일러 “완성된 체제의 반격”이라고 했지만 ‘전장’의 경계를 넘어서버린 테러는 체제의 빈틈을 타고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전쟁의 양상을 제시했다. 냉전은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선명한 전선은 사라져버린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이다. 글로벌주의는 상품시장의 개방만을 허용했지만 이 새로운 냉전은 ‘난민’의 쇄도를 낳음으로써, 노동시장의 빗장을 억지로 열리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아마도 미국 대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두 후보가 내세우는 미국의 예외주의는 분명 우리에게 큰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 대응의 동력이 바로 정치일 것이다. 한때 일본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조롱하던 우리였지만, 이제 우리 한국인만큼 경제적인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판단하는 사람들도 이 지구상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바야흐로 정치가 필요한 계절이 돌아왔지만, 아무도 정치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가을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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