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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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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용도- 나, 너, 세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여행

스위스 청년 작가와 화가의 여행이야기
인간의 따뜻한 시선, 삶의 고민 등 담아

  • 기사입력 : 2016-10-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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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 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1953년 7월, 스위스 제네바에 살고 있던 작가와 화가인 두 청년은 옛 유고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서 만난 뒤 피아트 토폴리노 승용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이들의 여행은 1년 반 뒤인 1954년 12월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경계지점인 카이바르 고개에서 끝이 났다. 힌두쿠시 산맥을 가로지르는 카이바르 고개는 유럽 국가들이 인도를 침략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주요 교역로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들에게 9주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있었다. 돈의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넘쳐났다. 이들은 일체의 사치를 거부하고 오직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만을 누리기로 작정했다.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 이들이 간 길은 계시를 주기도 했지만,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여행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행위였다.

    혹독한 기후에 맞서야 했던 건 물론이다. 이란에서는 정치상황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자동차 전복사고로 죽을 뻔한 위기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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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저자인 니콜라 부비에가 ‘피아트 토폴리노’ 승용차를 타고 여행을 하던 모습.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작가 부비에는 글을 쓰고, 화가 베르네는 그림을 그려 팔았다. 파키스탄에서는 바에서 일을 했다.

    베르네는 카이바르 고개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가는 길을 멈췄지만, 부비에는 혼자 여행을 계속했다. 부비에는 아프카니스탄 카불로 가서 1년가량을 산 뒤 인도와 실론(스리랑카의 옛 이름)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 그는 한국도 방문해 부산과 대구, 제주도 등을 여행하기도 했다.

    1963년, 카이바르 고개까지의 여정을 바탕으로 부비에가 쓴 글에 베르네의 그림이 결합되면서 ‘세상의 용도’가 세상에 나왔다. 책에는 삶의 깊은 경험에서 나온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삶을 성찰하게 하는 여행서’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초판 발행 30년 후 여행문학의 고전이 됐다. 그리고 부비에는 1991년 여행을 주제로 한 ‘생말로 북페어’에서 한 세대 작가 전체가 대가(大家)로 간주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신을 파괴할 권리를 여행에 주지 않는다면 여행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라는 부비에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니콜라 부비에 글, 티에리 베르네 그림, 이재형 옮김, 1만8000원

    서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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