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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자 가곡전수관장의 아름다운 우리 노래, 가곡(歌曲) (1) 가곡이란?

1000년을 넘게 이어온 풍류 속 느림의 미학

  • 기사입력 : 2016-10-1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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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민족에게는 1000년을 넘게 이어온 우리 겨레의 노래 가곡(歌曲)이 있다. 개화기 시절 수입된 서구의 음악에 맞춰 4·4조의 노랫말로 부르던 창가(唱歌)에서 비롯된 한국가곡 ‘봉선화’, ‘그리운 금강산’, ‘가고파’ 등 서양식 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우리 민족에 의해 전해지고 불리던 아름다운 우리 노래 ‘가곡(歌曲)’이 그러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전통 성악곡인 가곡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에 본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인 가곡을 전승하고 있는 마산 가곡전수관 조순자 관장의 도움으로 우리의 전통 가곡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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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 가곡 기록화 사업 촬영.

    가곡은 5장 형식으로 작곡된 잘 짜여진 틀(악곡)에 시조시(時調詩)를 그 노랫말에 얹어 국악 관현반주에 맞춰 부르는 우리 전통 성악곡이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들어 보았던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라는 책은 바로 이 ‘가곡’의 노랫말을 담은 가집이다.

    가곡은 18세기에 이르러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당시 지배계층은 물론이고 풍류를 즐기던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연주단체 이른바 ‘가단(歌壇)’을 만들어 가곡을 연주하고 즐겼다.

    멀리 지리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실개천이 흐르는 풍광 좋은 고즈넉한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어떤 이는 거문고를 타고 또 어떤 이는 피리를 불고 또 다른 이들은 대금, 해금, 단소, 가야금, 양금, 생황을 연주한다. 한 선비가 즉석으로 시를 짓고 그중 노래 잘하는 이가 그 시에 곡을 얹어 노래한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세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남명 조식의 두류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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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스럽고 품격 높은 이 장면은 불과 한 세기 전까지도 우리 선조들이 즐겼던 풍류를 느끼게 한다. 이 자리는 높게는 왕족에서부터 낮게는 천민까지 한자리에 어우러져 그들의 음악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장이었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조 풍류방 문화는 이렇듯 나눔과 소통의 문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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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순자 가곡전수관장과 이수자들이 KBS국악한마당에서 가곡 연주를 하고 있다./가곡전수관/


    신분상으로는 천민이지만 노래 잘하고 악기를 잘 다루는 전문 예인들인 악사와 기녀들은 이런 풍류방에 자주 초대돼 그들의 솜씨를 뽐내고, 그들의 음악을 사랑한 양반들은 풍류방을 주선하고 마련하는 중인계층인 별감들의 초대에 흔쾌히 동참했다. 모인 사람들이 함께 번갈아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지어 함께 연주하면서 서로의 예술세계를 인정하고 감탄하며 날이 지고 새는지도 모르게 한바탕 흥을 나누던 자리가 풍류방이었다.

    이 풍류방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던 것이 ‘가곡’, ‘영산회상’, ‘보허자’ 등의 풍류방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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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청구영언 포스터


    특히 ‘가곡’은 어떤 이가 한 곡을 부르면 거기에 답을 지어 부르고 또 다른 이가 그 답을 받아 한 곡을 부르면 또 다른 이가 답을 지어 부르는 이른바 ‘연창’ 형식으로 불렀는데, 그 곡은 모두 40여 개의 틀이 있었다. 즉 이 40여 개의 노래틀에 노랫말을 바꾸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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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해동가요 포스터


    우리 민족은 노래 가사 바꾸어 부르기 속칭 ‘노가바(노래 가사 바꾸어 부르기)’의 대가들이다. 유명한 유행가는 그냥 두는 법이 없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래의 틀에 가사를 살짝살짝 바꾸어 부르고, 대놓고 외국곡을 가져다 번안곡으로 만들어 유행가를 만들고, 선거 때면 언제나 특정 후보를 선전하는 가사만 바뀐 유행가들을 많이 듣게 된다. 이런 노가바의 원조가 ‘가곡’이 아닐까 싶다. 물론 가곡뿐만 아니라 민요나 잡가 등에도 이런 경향은 필수적으로 나타나며 노래 부르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아마도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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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가곡원류 포스터


    가곡은 풍류방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말하고 나아가 임금과 나라의 나아갈 바를 말하던 매체가 됐고, 모인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조화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서로 화합하는 법을 익혔다.

    노래가 가진 힘은 이렇게 조화롭게 화합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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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양지계 공연 때 조순사 명인의 가곡 연주 장면.


    위에 언급한 남명선생의 ‘두류산’은 가곡으로 부를 때 연주시간이 약 12분 정도 된다. 노래의 전주 격인 대여음과 간주 격인 중여음을 빼고도 45자 정도 되는 노랫말을 10여 분에 부른다는 말이다. 참 느리고 길게도 부른다. ‘두우우류우우우사아아아아안~’까지 부르는데 30초가 넘게 걸린다. 게다가 ‘잠겼세라’는 ‘자암겨었서이라’로 부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 노래는 참으로 어색하다. 가곡을 처음 듣는 사람은 ‘늘어지고 늘어져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하다가 몇 번을 듣고 또 듣고, 이 노래를 배워보고 불러본 사람은 ‘노래하면서 평화를 느낀다’는 사람이 많다. 혹자는 가곡을 ‘수신의 노래’라고 한다. 가곡전수관 일반인 무료강좌에 참여해 생전 처음 가곡을 접한 한 수강생은 “노래를 부르며 긴 호흡과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통해 몸도 마음도 정갈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 노래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가곡을 계속해 부르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수심이 가득하다가도 노래 한 곡을 정성들여 부르다 보면 어느새 어지러웠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곤 하니 말이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끔은 느리고 느린 이 가곡을 배워 불러보고 악기와 함께 연주하며 조화를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

    ‘0’과 ‘1’, ‘흑’과 ‘백’, 디지털이 난무한 이 세상에 아날로그적인 풍류를 즐기며 노래하고 사색하는 21세기 율객(律客)을 기대하며 다음 시간에는 ‘가곡의 전성시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정리=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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