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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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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공정한 사회를 기대한다- 이문재(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6-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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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 기운은 나에게는 청량감보다는 황량함이 먼저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좀체 떨칠 수 없는 느낌이다. 아무리 데워도 금방 차갑게 되돌아온다. 이맘때의 대학도서관 공기는 서서히 더워진다. 바깥 공기가 바뀌었기도 하고, 평생 직장을 잡아야 할 취업철이기 때문이다. 쌀쌀해진 바람을 맞고 들어서는 도서관의 냄새는 참으로 야릇했다. 오래달리기를 한 뒤의 입냄새 같은 텁텁함, 보얗게 뒤집어쓴 먼지가 풀풀거리는 매캐함이다. 몇 시간째 꿈쩍도 않는 그들에게 참으로 미안했지만, 풋풋한 열정이나 달디단 젊음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그 공간의 한쪽 구석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매년 맞는 가을 바람은 황량한 추억이다.

    젊음을 옥죄는 취업 시즌이다. 어렵다는 말이 수십년째 되풀이되고 있지만, 올해는 정말 최악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있는 직원도 내보내고, 큰 회사들은 투자에 몸사리고 있는 마당에 뭉텅뭉텅 사람을 뽑는 곳이 있을 리 없다. 젊음들은 더 괴롭고 지친다. 성공은 차치하고, 과연 이 사회에 온전히 발이라도 붙일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자신의 존재(存在)에 대한, 나아가 가치(價値)를 매기게 된다. 나는 어떤 모양의 조각일까. 거대하고 복잡한 퍼즐에서 내가 자리할 곳이 있긴 하는 것일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빠꼼한 곳은 없다. 돈 많고 힘 있는 부모를 두지 못한 까닭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끼어들어야 하는데 도무지 빈 곳이 없다.

    한 국내 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계층이동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40.2%가 ‘중간 수준’, ‘가능성이 낮다’ 29.0%, ‘매우 낮다’ 15.0% 응답률을 나타냈다. 반면 ‘매우 높다’ 응답률은 1.9%, ‘높은 편이다’는 13.9%에 그쳤다. 연구원은 계층이동 가능성이 낮은 데 대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사회신뢰도와도 연관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신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29.7%만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사회불공정 정도도 대체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종합해 보면 ‘흙수저’는 ‘금수저’가 될 수 없고, 이는 사회 전체의 신뢰도와 공정성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들이 과연 이런 불공정한 사회에서 제대로 된 꿈을 갖고, 또 그 꿈을 이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젊은이들이 많은 사회라면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조사에서는 사회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기회 균등, 시민의식 제고, 법치주의 정립, 경제적 약자 배려,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 등을 꼽았다. 특히 공정사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득권층의 특권 내려놓기가 최우선이라고 응답했다. 법과 원칙에 의한 사회운영, 학연과 지연 타파, 공정하고 투명한 공직인사,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합리적인 의사결정 시스템 등도 공정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한 요건으로 들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불공정을 깨뜨리기 위한 각종 제도와 규칙을 정비하는 등 부단한 경주를 해왔다. 또 지원과 통제를 통해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노력도 했다. 그러나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무시 당하는 ‘흙수저’들은 아직도 많다. 가을이다. 더 이상 이들에게 찬바람이 황량한 추억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이문재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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