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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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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시골살이- 김상군(변호사)

  • 기사입력 : 2016-10-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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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에 사니까 지방간이 생긴다”라면서 술자리에서 너스레를 떠는 변호사업계 선배도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에 강남에 아파트를 알아본다고 한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처럼 서울은 모든 면에서 중심으로 군림한다. 서울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서울과 그 여집합인 시골로 나눈다. 오천만 인구 중에 천만 남짓만 서울에 살지만, 나머지 사천만은 뭉뚱그려 시골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몹시도 오만하다.

    필자도 대학에 진학하면서 10년 남짓을 서울에 살았다. 서울살이는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하숙집과 자취집을 전전해서 그런 것인지 부평초와 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겉으로 친절한 듯해도 10원 한 장을 양보하지 않는 집주인과 친하기 어려웠고, 과밀한 인구밀도 때문에 누군가 행여 해코지하지 않을까 경계하며 무표정하게 사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면 몹시 편리하지만 그만큼 불편하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서울에 가야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서울 백화점에 가보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곳에서 한 사람이 인사를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내리는 곳에서도 또 한 사람이 인사한다. 일자리가 많아서 사람이 모여드는 것인지, 사람이 많아서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인지 그 인과관계는 잘 모르겠다.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시골’에 살았으면서도 직업을 얻어 서울에서 고향에 다시 내려왔을 때에는 사실 좀 갑갑했다. 술을 마시고 귀갓길에 도로를 무단횡단했는데, 다음 날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변호사님, 어제 빨간불에 길 건너시는 거 봤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낸다.

    한 다리 건너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라 인연을 맺기도 쉽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은 모습도 쉽게 감추어지지 못하므로 답답했던 것이다.

    흔히 서울과 지방의 격차로 의료, 교육, 문화의 수준 차이를 꼽는다. 지방에 계신 의료계, 교육계, 문화계 인사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이나 그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병에 걸리면 서울 대형병원을 알아보고, 어떻게 해서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해야 사람들이 인정을 하고, 유명 가수의 공연은 지방에서는 보기 어렵다. KTX가 들어오고 난 후 서울과의 거리가 줄어 경향간 격차는 어느 정도는 극복이 되는 것도 같으나, 지방에 살고 있어서 푸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에 가끔은 억울할 때도 많다.

    며칠 전 태풍이 불어 산사태가 나서 도로에 뻘건 황톳물이 콸콸 넘쳐나는데, 라디오에서는 쾌청한 가을 하늘이 좋다는 한가로운 서울 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진이 나서 몸을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도 TV에서는 연속극이 계속되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가 문제가 생기면 부산, 경남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사하지 못하지만, 그 심각성에 대해 정부가 심사숙고하는지도 의문이다. 낙동강에 녹조가 가득 차 있어도 뉴스 끝자락에서나 그 소식을 간신히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서울에서 지진이 났다면 온 나라가 시끄러웠을 것이라는 인터넷 댓글도 보았다.

    대한민국은 너무나 서울 중심이다. 공기업을 지방에 분산하고, 정부의 일부를 세종시로 옮기는 등의 인위적인 행동으로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가 있으나, 서울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에서는 서울 출장으로 길에서 시간만 낭비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불편하다는 속내이다.

    필자가 10여년 전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야에 사람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는 광경이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길에 차가 밀리지 않아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킬 수 있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길에서 시간이 낭비되지 않고,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건 시골살이의 즐거움이다. 복닥거리면서 인간 본성에 반하는 삶을 살면서도 서울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고 묻고 싶다. 좋다면야 그대로 사셔도 되고.

    김상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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