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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이런 자치단체장 없나요- 김진현(사회2부 본부장·이사대우)

  • 기사입력 : 2016-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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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5시. “오늘은 어디지?” “압구정 현대아파트 부녀회 방문입니다.”ㅤ“오늘 중요한 날이네. 뭐 입을까?” “작업복 입으시고 오후 압구정 백화점 가실 때는 정장을 하시는 게….” “그렇게 하자.”

    인구가 별로 많지 않은 작은 도시. 자치단체장인 A씨와 유통담당 팀장, 수행비서가 눈을 부비며 아침 회의를 한다. “오늘 청내에 중요한 행정 일정이 있는데요.” “그건 부단체장과 기획실장, 담당 과장이 하면 돼. 그분들 30년 동안 그일을 해왔는데 뭔 걱정이야. 잘할 거야. 우린 물건 팔 궁리나 하자고.”

    6시. 일행은 모텔 골목을 빠져나온다. 뜨끈한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으로 간다. 가리비가 보이자 A지자체장이 상인에게 묻는다. “이거 어디 건데요?” “전라도 여수에서 오는 겁니다.” “해산물은 경남인데. 청정바다 고성 통영 거제 해산물 정말 좋아요. 직거래도 할 수 있는데. 아쉽네….”

    채소시장으로 간다. 거기서도 한소리한다. “남해안의 시금치와 파프리카 정말 좋은데요.” 한 바퀴 돌고 강남으로 발길을 돌린다.

    “글로벌 시대에 해외로 나가 지역의 문화도 알리고 수출 상담도 하고 그렇게 눈을 좀 넓게 돌리는 게 어떠냐는 말들이 많은데 난 생각이 달라. 해외 수출, 중요하지. 그런데 우린 아직 내수시장에도 우릴 다 알리지 못했어. 미국 일본에 팔아 봐야 양이 얼마 안 돼. 굴 조금, 파프리카 딸기 조금이지. 우리 농민들이 힘들여 키운 쌀이나 채소, 수산물. 이런 걸 많이 팔아야 해. 우선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이런 곳부터 판로를 개척해야지.”

    미리 약속을 한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A씨는 서울 아주머니들 앞에서 무선 메가폰을 쓰고 구수한 사투리를 써 가며 세일즈를 한다. “사모님들, 우리 경남의 수산물은 그 까다롭다는 미국식품의약국인 FDA도 통과했다 아닙니꺼. 수산과 공무원들이 오염 감시한다고 매일 출장입니더. 바다 한가운데 양식장에 화장실도 있습니더. 그냥 바다에 실례하는 그런 거 안 합니더. 좋은 쌀 만든다고 연구소도 있고요. 농약도 안 써요. 축산 공무원들도 좋은 고기 만든다고 엄청 뛰댕깁니더. 한국 전통 소인 칡소 사육두수 늘리려고 연구도 많이 합니더. 시금치 옥수수 부추 구지뽕 된장에 청국장도 좋습니더. 우리 홈페이지 오면 좋은 거 많습니더. 내가 직접 보증합니더. 내 이름 말하면 선거법 걸릴 거고요. 내가 그 동네 대빵입니더. 내 믿고 사 드이소.”

    백화점에 가서도 A씨의 설명은 계속됐다. 세일즈 팀은 그렇게 농수축산물 판로를 개척하며 하루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가며 한마디를 했다. “지난번 영농 현장 갔을 때 농민들이 한 말 기억하냐. ‘연구를 해서 잘 만들면 뭐합니까. 팔 데가 없는데요’라던. 난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늘 고생했다. 지역민을 위해 우리가 좀 더 뛰어보자.”

    억지스러울 수도 있다. 지역의 수장이 이런 출장을 간다는 설정 자체가 우습다고 핀잔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서점에 무수히 진열돼 있는 좋은 리더에 관한 책이나 기업의 성공사례에 관한 책들 중 아무거나 한 권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꼭 짚으라면 자메이카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의 리더십을 분석한 ‘콜린 파월의 행동하는 리더십’을 권하고 싶다. 이 가을, 권위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고쳐주는 것에 독서만 한 게 없다며 책에 묻혀 사셨던 내 아버지의 지론을 전하며, 이렇게 행동하는 자치단체장이 어디 없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접는다.

    김진현 (사회2부 본부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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