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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라스푸틴’과 ‘신돈’의 국정농단- 이상목(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6-11-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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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공황상태다.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비선(秘線)’에게 국정을 의존한 사실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상상 너머의 일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현실이 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참담함을 토로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회복이 쉽잖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016년 11월 대한민국호는 짙은 안갯속 성난 파도 위에 떠 있는 형국이다.

    호사가들은 게이트 중심인물 최순실을 제정 러시아 ‘라스푸틴’과 고려왕조 ‘신돈’에 비유한다. 두 역사인물은 우연히 정치권력을 사유해 국정을 농단한 요승(妖僧)이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1869년께 니콜라이 황제가 다스리던 러시아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라스푸틴. 그는 이런 출생환경 탓인지 18세가 되기 전까지 탕아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수도원에 들어가 신비주의 종파에 빠지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리고 ‘육체적 쾌락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이상한 교리에 빠져 성애(性愛) 기술을 연마한다. 이후 수도승이 된 그는 예언과 치유활동으로 이름을 떨친다. 그 이름은 황궁에까지 뻗쳤고, 황후와도 만나게 된다. 마침 황태자가 혈우병을 앓아 황가의 근심이 컸는데, 어떤 의사도 못 고친 것을 거뜬히 치료해낸다. 라스푸틴은 이를 배경으로 황제의 총애를 얻었고 정치권력까지 손에 넣었다. 이후 특유의 성애로 귀족 부인들을 차례로 농락했다. 급기야 황후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이런 사실을 무용담처럼 떠벌렸다. 귀족들이 분개했고, 1916년 12월 30일 살해되면서 국정농단은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제정 러시아는 곧 몰락하고 말았다. 100년 전의 일이다.

    고려시대 신돈(?~1371)도 집권귀족의 입장에서는 요승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창녕 화왕산 옥천사 여종이었다. 아버지는 영산의 유력자로만 추정된다. 그는 이런 신분적 결함으로 산방을 겉도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승려가 된 그는 기득권 세력에 반감을 품게 된다. 어떤 연유인지 1358년 공민왕을 만나면서 인생역전을 한다. 당시 공민왕은 귀족 집권층에 염증을 느끼고 새 인물을 내세워 개혁을 구상하던 중이었다. 왕이 그를 발탁한 계기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자객을 물리쳐 준 스님이 현실에서 만난 신돈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사랑하던 왕비가 죽자 공황상태에 빠졌고, 신돈에게 국정을 내맡겼다. 교만해진 신돈은 공민왕과 친구처럼 행동할 정도로 안하무인이 극에 달했다. 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끝내 참살당했다. 토지분배·노비해방 등 민생개혁의 공적은 있지만 권능 없는 자의 국정농단이었다. 두 사례는 아무 권능 없는 자가 국정을 농단할 경우 극심한 혼란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훈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과 원칙, 신뢰’의 가치를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큰 상처를 입었다. 공자가 말한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드러난 의혹이 차라리 모두 거짓이었으면 좋겠다. 국가안정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전은 어려워 보인다. ‘문고리 3인방’ 등을 교체하는 등 수습책을 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이게 어찌 나라냐”고 분노하고 있다. 이 상황이 어떻게 수습될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이상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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