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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35) 이근택 작곡가의 가곡 ‘그리운 가포리’

기억의 한 페이지로 남은 아름다운 바다, 가포

  • 기사입력 : 2016-11-0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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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권의 시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책 속에는 사라진 마산 가포 앞바다를 그리워하며 안타까워하는 사연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유람선 물살 짓는 해변의 창 너머로/ 그 겨울 목로찻집 연인들 떠나갔네

    빈 노트에 그려보는 외로운 하얀 산장/황혼빛 물든 햇살 돝섬에 내려앉네

    산등을 넘어가며 설레던 소풍길/푸르던 소나무 반겨주던 가포리/

    저 바다 흰모래들 모두 다 사라지고/ 그리운 이야기를 저 둑이 머금었네

    <이처기의 ‘그리운 가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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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이근택(창원대 음악대학 명예교수)씨가 작곡가 김성재씨와 함께 매립된 가포만이 내려다보이는 가포 뒷길을 걸으며 옛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오래전 마산 가포리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아 옛날 마산 가포 앞바다와 추억의 그 길은 정말 아름다웠었지…, 은빛 모래가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춤을 추고, 통!통!통! 통통배 소리가 내 마음을 설레게 했었는데…!”

    30여 년 전 추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교육자(대학교수)로 첫 발령을 받고 마산 가포리 옛 마산대학(현 창원대학교)에 내려왔을 당시 마산 가포리 앞바다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꿈의 바다였습니다.

    서울 촌놈이 출세했지요. 지척에서 이런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벚나무가 만개한 봄날, 하얀 꽃잎 사이를 따라 교정의 벚꽃 길을 거닐며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이곳에서 학생들과 어울려 숲길을 따라 바닷가와 카페촌 골목 등을 누비며 많은 추억들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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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록새록 돋아나는 추억의 필름은 이젠 오래전 잊혀져 버린 기억의 한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마음의 고향이 그리워 마산 가포의 아름다운 바다와 추억의 길을 찾아 나선 작곡가 이근택씨의 ‘그리운 가포리’ 이야기입니다.

    가을 햇살이 좋은 어느 날. 그리운 마산 가포 앞바다와 추억이 오롯이 새겨진 그 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옛 마산대학이었던 교정은 지금은 가포고등학교로 변했지만 아름드리 벚나무와 소나무, 건물의 일부는 그대로 남아 오랜만에 찾은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하얀 눈꽃이 아름다웠던 교정의 벚꽃 길은 여전히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정에서 바라본 가포 앞바다는 황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쪽빛 바다는 아니어도 아름다웠던 가포만은 매립지로 변했고,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은 물론 추억이 담긴 카페촌과 바닷가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욱 슬펐습니다. 은빛 모래가 반짝이던 모래톱과 마을길을 따라 이어진 바닷가에 발을 담그며 걷던 추억의 그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대신 매립지에는 대형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사각형 모양의 투박한 공장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매립지 끝에 위치한 마산 가포신항의 대형 크레인이 위용을 뽐내듯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산업화의 물결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옛 추억은 모두 삼켜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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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이근택씨가 벚꽃길의 추억이 남아 있는 옛 마산대학(현 가포고) 교정을 거닐고 있다.

    국립 마산병원 앞을 지나 가포교회 뒷길을 따라 가포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올랐습니다. 매립되기 전 이곳을 추억하는 곡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지만 되돌릴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다행히 주위의 권유(마산음협)로 곡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이처기 시인의 ‘그리운 가포리’가 눈에 띈 것입니다. 시의 구절구절이 마치 나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습니다. 유람선, 목로찻집, 하얀산장, 황혼빛 물든 햇살, 돝섬, 흰모래 사라지고…, 시를 본 순간 곡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음먹었지요. 너무나 애틋한 마음으로 가포리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음률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곡을 써내려 갔습니다.

    가곡 ‘그리운 가포리’는 민요풍으로 전체적인 곡의 느낌은 아르페지오 주법(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을 주로 사용해 바다와 물결의 느낌을 표현하려 애썼습니다. 5음계의 선율과 화성을 사용하면서 장음계와 단음계를 넘나들도록 했지요. 민요풍은 흥겹고 정감이 넘치는 특징이 있는데 ‘그리운 가포리’ 역시 마찬가지로 주로 6/8박자를 택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이가 모두 춤추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그 겨울’, ‘저 바다’, ‘황혼빛’, ‘유람선’ 등 추억이 아련한 곳은 당김음(syncopation)을 사용해 그 부분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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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곡의 중간부분은 큰 변화를 주기보다 계속되는 바다의 풍경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웅크린 돝섬을 바라보며 간주를 통해 처음 느꼈던 바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려 애썼습니다.

    곡의 가장 절정은 맨 마지막 부분에 두어 감정을 표출하려 했습니다. ‘저 바다 은모래 모두 다 사라지고/ 그리운 이야기를 저 둑이 머금었네’에서 ‘저 둑이 머금었네…’를 한 번 더 강조해, 할 말은 많지만 참고 인내하다 마침내 외침으로 곡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마디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모두가 떠나고 사라진 가포의 아름다운 풍경을 ‘저 둑이 머금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아마도 세월이 흘러 사라져 버린 가포의 흔적들을 ‘둑’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만큼 가포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 그리고 아쉬움이 교차하는 것 아닐까요?

    영롱한 햇살에 비친 아름다운 가포만의 풍경은 이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추억 속에 묻혀 고요히 그 마음을 전할 뿐입니다. 삶의 흔적을 찾아 길 떠나는 나그네처럼, 이제는 나의 추억 속 가포리를 찾아 길을 떠나 봅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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