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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농단정가(壟斷定價) - 높은 곳에 올라가서 값을 정한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11-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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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즈음 대통령을 등에 업고 설친 최순실씨나 우병우 수석비서관 등을 이야기할 때 ‘국정농단’이란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농단’이라고 하니까 상식이 상당한 사람들도 ‘농’자가 놀릴 ‘농(弄)’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알고 보면 놀릴 ‘농’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농단(壟斷)’이라 할 때의 ‘농’자는 ‘언덕’이란 뜻이고 ‘단(斷)’자는 ‘깎아지른’의 뜻이다. 농단의 원래 뜻은 ‘깍아지른 언덕’이란 뜻이다. 왜 ‘독차지한다’는 뜻이 나왔을까? 그 유래는 맹자(孟子)가 잘 설명했다.

    “시장이란 곳이 원래 사람들이 모여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바꾸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뒤 어떤 비천한 사내가 있어 시장 부근의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시장의 상황을 다 내려다보고 어디가 비싸고 어디가 싼지를 파악해 내려와, 싼 것을 사서 비싸게 팔아 이익을 많이 남겼다. 이에 좋은 위치에서 많은 재물이나 권력을 모으는 것을 농단이라고 했다.

    ‘비서(秘書)’란 본래 ‘비밀 문서’란 말인데, 나중에는 비밀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을 비서라 하게 됐다. 대통령이나 고위 인사 곁에서 문서를 정리하거나 일정을 배정하거나 손님을 접견하는 일 등을 맡는 사람을 비서라고 했다. 비밀 문서를 관리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실권자와 가까웠고, 밖의 다른 사람이 모르는 정보도 알고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농단하기 제일 좋은 자리였다.

    조선 시대에는 왕의 비서를 ‘승지(承旨)’라고 불렀는데 ‘임금의 뜻’을 받든다는 뜻이다. 6명의 승지가 있고 비서실장에 해당되는 승지는 도승지(都承旨)라고 불렀다. 그러나 모두 정3품이었다. 임금의 주변에서 근무하면서 임금의 명령을 대신 내리기에 권한이 너무 셀 것을 우려해 정3품으로 직급을 낮췄다.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은 너무 비대해 행정부에 있는 부서가 거의 다 갖추어져 있다. 비서실에서 행정부처 장·차관을 차단하고서 자기들 멋대로 일을 꾸민다. 대통령을 등에 업었기 때문에 책임자인 각 부처 장관들이 실제로 비서들에게 끌려 다닌다.

    인사 문제만 보면, 대통령이 5년 동안에 5000여 자리를 임명한다고 한다. 그 많은 자리를 대통령이 직접 다 챙길 수 없고, 민정수석실에서 정보를 갖춰 대통령에게 보고하는데, 실제로 대통령이 잘 모르니까 특별히 중요한 자리 말고는 대부분 민정수석비서에게 물어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민정수석 등 몇몇 비서가 각급 국가 기관, 국립대학, 국영기업체 등의 인사를 다 한다. 정작 그 자리에 가장 적절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발탁돼 임용되는 것이 아니고, 로비를 잘 한 사람이 임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대통령이 어렵게 됐다. 그러나 더 문제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순실씨와 그 무리들이 너무 장난을 쳐서 당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壟 : 언덕 롱. *斷 : 끊을 단.

    *定 : 정할 정.* 價 : 값 가.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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