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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120) 산청 (9) 단성면 입석마을 ~ 삼장면 유평마을

세월에 묻힌 아픔의 역사, 가슴에 묻다

  • 기사입력 : 2016-1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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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은 어수선해도 가을의 계절은 속절없이 깊어진다.

    가을의 정취를 느껴볼 겨를도 없이 겨울의 문턱 입동이 찾아왔다.

    가을바람 따라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나무에서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비 따라 가을이 오더니 바람 따라 이내 가을이 가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길에서 만난 농부는 추수를 하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를 짓는 이가 천하의 근본”이라 했다.

    탈곡기에서 후드득 낟알 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 마음까지 넉넉한 농부가 된다.

    가을은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이름난 관광지나 사람들로 붐비는 복잡한 곳이 꼭 좋은 여행지는 아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떠난 여행길 시골 마을에서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본다.

    아련한 추억 속 고향집이 그려진다.

    여행을 시골마을에서 묵어가려면 도회지의 편리한 삶을 모두 내려놓고 가족이 돼야 한다.

    여행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고 인연을 이어주는 사다리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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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속사지 삼층석탑. 산청군 단성면 입석마을에서 단속사지 삼층석탑까지의 거리는 10리가 채 안 된다.

    단속사지·진양강씨 정려각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만추의 날 단속사지 부근 단성면 입석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역사 속에 묻힌 단속사의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단성면 입석마을에서 단속사지 삼층석탑까지는 10리가 채 안 되는 3㎞이다. 단속사에는 신라시대의 화가 솔거가 그렸다는 유마거사상이 있어 신화라고 했다. 단속사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삼국유사에 서기 763년(신라 경덕왕22년) 신충이 왕을 위해서 세웠다는 설과 동서별기에 서기 748년(경덕왕7년) 이순이라는 충신이 조연소사를 고쳐 단속사라고 했다는 것인데 신행선사, 대감국사, 진정대사 같은 고승들이 많이 배출됐다. 입석마을을 지나면 석벽에 광제암문이라는 글씨가 있는데 서기 955년(고려성종14년)에 단속사 스님이 쓰고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치원의 글씨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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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속사지 광제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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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속사지 당간지주.

    단속사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고 서기 1568년(조선 선조원년) 유생들에 의해 불상과 경판 등이 부서졌고, 그 후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략으로 완전히 불탔다고 전한다. 1489년 김일손의 ‘두류기행록’에도 단속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광제암문과 뽕나무, 밤나무 밭이 무성했으며 장경판각이 있었다고 한다. 절집의 편액이 ‘지리산단속사’라고 했으며 당시까지 고승들의 행적을 비석과 비단에 새긴 칙서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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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양강씨 정려각.

    입석마을에서 고향의 정취가 가득한 아침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나서는데 입석마을 입구에 진양강씨정려각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떠났는데 강씨가 미처 떠나지 못했다. 왜적이 부인을 범하려 하자 항거해 쫓아 보내고 왜적의 손이 미쳤던 몸을 칼로 도려내 끝내 숨을 거뒀다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전주최씨 가문의 파산이씨 정문이다. 이씨 부인은 18세에 혼례를 치렀는데 신행 전에 역질에 걸려서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주야로 약을 달여 시중을 들었으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들보에 목을 매어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가치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통문화가 입석마을을 더 따뜻한 기운으로 감싸고 있었다.


    대원사계곡·유평마을

    아직 다하지 못한 단속사의 이야기는 접어두고 덕천강을 따라 가을이 깊어가는 깊은 지리산 대원사 계곡으로 향했다. 세상이 어수선하거나 정치적 가치가 다를 때 올곧은 선비나 학자들은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유람하거나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맺히고 엉킨 세상일을 풀어냈다. 자연은 인간과 공존의 대상이지 정복의 대상은 아니다. 그대로 두고 함께 공존하는 가치를 배워야 한다. 부질없는 욕심과 탐욕을 가지면 자연은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대원사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물줄기의 공식명칭은 덕천강이다. 대원사가 있어 대원사계곡 또는 유평마을이 있어 유평계곡으로도 부른다.

    상장면 평촌마을에서 좁아지는 도로를 따라 진입하면 옛날 매표소가 있던 주차장에 소막골 캠핑장과 편의시설이 있다. 대원사가 있는 유평마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경사가 급한 벼랑을 끼고 도는 좁은 길을 가다 보면 티베트의 차마고도를 연상케 한다. 등산객이나 화전민들이 다니던 좁은 길이었는데 편리한 문명의 혜택을 이유로 지속적인 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절벽 아래 계곡에는 소와 담이 곳곳에 있고 벼랑길을 버티고 선 아름드리 나무와 숲들이 원시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대원사교가 있다. 여기서부터 대원사 계곡이라 부른다. 대원사계곡에서는 1998년 7월 31일 시간당 70㎜의 폭우가 한밤중에 쏟아져 내렸다. 계곡에서 야영 중이던 피서객 8명이 계곡 물이 불어나 순식간에 실종되는 사고가 있었다. 계곡 입구에 당시의 사고를 알리는 위험안내 표지판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져가고 있다. 대원사계곡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힘찬 물줄기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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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 계곡의 일주문.

    대원교를 지나면 ‘방장산 대원사’ 편액이 붙은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은 불가에서 기둥이 한 줄이라는 것에서 유래됐다. 4개의 기둥이 있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이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불가를 향한 한 가지 마음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또 다른 의미는 불가와 세속의 경계이기도 하다. 일주문을 지나면 불가의 법을 지켜야 하는 의미인데 위치가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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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평마을 전경.

    대원사를 1.2㎞를 가면 유평마을이다. 유평마을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꿈꾸는 지리산 종주의 도착지이다. 화엄사를 출발해 숨 막히는 코재를 올라 노고단에서 일몰을 만나고, 반야봉과 세석평전을 지나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다. 장터목과 천왕봉 사이 고사목지대를 지나 중봉과 하봉을 거쳐 치밭목 산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유평마을로 하산한다.

    젊은 시절에는 가끔 종주의 길을 걸었던 추억이 유평마을에 남아 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전 가족과 지리산 종주에 나섰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날이 어두워서야 치밭목 산장에 도착했는데 산장에는 잠자리가 없었다. 당시 텐트와 담요를 내주던 산장지기 민병태씨의 안부가 궁금하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 흘렀지만 고마움을 항상 잊을 수가 없다. 아름다운 추억은 늘 행복을 준다. 지금은 중형버스까지 드나드는 번듯한 곳이 됐지만 옛날 유평마을은 산꾼들이 머물며 추억을 남겨 놓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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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삼장초등학교 유평분교.

    유평마을 입구에 1946년 설립인가를 받아 1964년 1회 졸업생을 배출한 삼장초등학교 유평분교가 있었다. 1994년 4월 폐교가 된 일명 가랑잎초등학교이다. 부산의 신문기자가 취재왔다가 주변과 교정이 온통 가랑잎으로 뒤덮이고 자연을 닮은 어린이들이 뒹굴며 뛰어노는 것을 보고 가랑잎초등학교라고 기사를 쓴 데서 유래됐다. 맑은 자연환경 속에서 뛰노는 어린이들이 가랑잎과 어울리는 행복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삼장초등학교 유평분교는 폐교 후 학생 야영장과 수련장으로 활용되다가 근래에는 대원사의 템플스테이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요즘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때다. 우리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모두가 수도자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종교가 강조하는 가장 작은 덕목이라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인문학적 가치를 높여 사람이 맑아지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그러다 보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해본다. 철문이 굳게 닫힌 문틈으로 교정이 보인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수북이 쌓였던 운동장엔 잔디가 자라고 있고 물소리만 아이들 웃음소리 대신 들려오고 있었다. 지리산 곳곳에 숨겨진 비경을 따라 계곡이 주는 청신함을 따라 길을 내려서면 방장산 대원사이다.

    (마산대 입학부처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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