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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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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엉망인 나라에도 연말은 온다- 김진현(통영고성 본부장·이사대우)

  • 기사입력 : 2016-11-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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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달력이 얇아졌다. 광음여전(光陰如箭)에 세월여시변화무쌍(歲月如矢 變化無雙)이라 했다. 세월이 흐르는 화살처럼 빠르고 변화는 더없이 심하다는 말처럼 그렇게 2016년의 마무리 시간이 다가온다. 언제나 그랬지만 올해도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아니 2016년은 경천동지(驚天動地)다. 태풍 차바에, 경주 지진에 놀란 가슴 진정하기도 전에 말도 안 되는 최순실 사태로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무딜대로 무디어진 50대 중반의 나 같은 사람조차 TV 리모컨을 던져버릴 만큼 대통령이, 정부가, 정치인들이,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싫다.

    넋이 절로 빠지는 지금, 그래도 해는 넘어간다. 한 해 정리를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각 도시의 주요 광장들엔 슬슬 사랑의 온도계가 세워진다. 보는 이의 눈길을 끄는, 그래서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는 구세군들의 정겨운 종소리도 들릴 것이다.

    겨울이 오면 홀로 계신 어르신 돌보는 분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각종 단체와 회사와 운동선수들까지 나서 연탄나르기를 한다. 그런데 이런 기부는 대체로 넉넉지 않은 사람들끼리 나누는 기부다. 약 52조원으로 추정되는 자신의 지분을 기부하겠다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 8800억원인 전 재산을 기부 약속한 팀쿡 같은 사람이 왜 한국에는 드물까. 내 자식에게 물려주기를 원하는 기업인들의 고리타분한 생각과 함께 공익법인 ‘5%룰’도 한몫한다. 상속·증여세법 제48조, 공익법인에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넘게 기부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 상속·증여세를 내야 하는 법이 있다. 이 때문에 황필상 전 수원교차로 대표가 교차로 주식 90%를 구원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225억원의 세금폭탄을 맞기도 했다. 이번에 미르재단에 기부금 아니 보험금을 낸 기업들이 53곳에 774억원에 육박한단다. 정신 나간 것 같은 한 여자에게는 막대한 돈을 내면서 기부에는 인색한 것이 대한민국의 대기업이다. 물론 정부 정책을 지원한 것이라 말하겠지만.

    대통령에게 당했다는 슬픈 내 속처럼 날은 차가워지고, 최순실의 옆에서 호가호위하며 미소 짓던 놈들의 비웃음처럼 바람은 차갑게 살결을 스친다. 비릿한 찬바람에 정신을 좀 차려보자.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은 내 이웃들이 힘들어하는 시간이다.

    군부로서는 드물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2명을 보유할 만큼 기부문화가 확산돼 있는 고성군에서는 연말이면 큰 나눔 행사가 열린다. 오는 27~30일 열리는 이웃사랑 김장나눔축제. 고성군은 2박3일간 계속되는 나눔 축제에 참가할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를 16일까지 모집하고 있다. 봉사는 현물, 현금, 노력봉사도 된단다. 김장배추 8000포기, 김치 1800통이 목표다. 또 고성교육발전위원회는 이달 말에 미국에서 유학 중인 18명의 고성 꿈나무들에게 반찬을 보낼 거란다. 돈으로 사서 보내는 게 아니라 이사장을 중심으로 반찬을 만들어서 보낸단다. 밥은 먹고 싶은데 반찬이 없어 맨밥을 먹지만 그래도 미국 음식보다 낫다는 말을 들어서란다.

    나도 수년 전부터 조금씩 기부를 하고 있다. 기부,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다. 나는 남을 위해 기부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기부한다. 나의 뿌듯함을 위해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렇게 마음먹는 게 기부의 시작이다. 최순실 대통령에 당한 속은 쓰리지만 기부를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연말을 기대해 보자면 돌 맞을 일일까.

    김진현 (통영고성 본부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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