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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36) 서일옥 시조시인과 걸어본 창녕 부곡 학포수변생태공원길

강물 따라 걸으며 엄마와의 추억에 닿는 길

  • 기사입력 : 2016-11-1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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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 헤어짐과 만남의 연속이다. 아직 설익은 내 삶도 그러했다. 어제와 이별한 오늘은 다가올 내일을 반기기 위해 익숙해지기 마련이었고, 삶의 반이었던 그 사람과의 이별로 텅 빈 마음은 다른 이로 채워지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채기 내기를 단련하고 이별을 자주 겪는다 한들, 먹먹해지고 감당이 안 되는 이별이 있다. 바로 가족과의 헤어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떠올리기 힘든 게 엄마와의 헤어짐일 것이다.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애달픈 엄마와의 헤어짐은 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걸까.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함은 누구에게나 막막하고 두렵고 공허한 일이다. 엄마는 다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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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일옥 시조시인이 정민주 기자와 함께 창녕군 부곡면 학포수변생태공원길을 걷고 있다./성승건 기자/

    엄마의 빈자리를 시조로 채우는 시인이 있다. 언제나 말간 얼굴로 시를 쓰는 서일옥 시조시인이다. 서 시인은 어느덧 예순을 넘겼지만 다섯 살의 어느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엄마 손을 잡고 창녕으로 이사 가던 날 말이다. 당신이 남편과의 마찰로 어린 딸의 손을 잡고 홀로 터 잡은 곳이 바로 창녕군 부곡면이다. 딸이 아홉 살 들던 해, 그 딸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곧 마산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지만 그래서 더 애달픈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곳이란다. 엄마는 일생을 피붙이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고단하고 적막한 삶을 살아냈다.

    서 시인의 시조는 소재 스펙트럼이 꽤 넓다는 평을 받는다. 손 닿는 곳에 있는 가재도구부터 소외계층과 노동자를 다룬 시대정신까지, 모두가 시감(詩感)이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밥’, ‘엄마는’, ‘어머니의 방’ 등 엄마에 대한 시조들이 눈에 띈다. 편수가 제법 되는 데다 내용도 울림이 있어서다.

    니도 얼매 안가서 내 심정 알 끼다/진 데는 마르고 마른 데는 질어지는 것/울 엄마 건네던 말씀/명치끝에/아/린/다 -‘눈물’ 전문-


    시인이 야위어 가는 엄마와의 이별을 하루하루 준비하며 애타는 심정으로 시를 썼을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괜스레 울컥한다. 미처 몰랐을 게다. 공기 같은 존재인 엄마가 떠난 지금이 얼마나 막막하고 쓸쓸한지.

    ‘엄마’에 대한 작품을 이야기하던 서 시인은 “문득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학포다리 옆 강변을 찬찬히 걸어요”라고 말했다. 서 시인은 창녕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곳인데다 교장과 교육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새싹을 키우던 곳이어서란다. 또 문우들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밤새 치열하게 공부하던 추억도 곳곳에 배어 있다고 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양다리를 걸친 애매한 11월 초입에 서 시인과 강변을 찾았다. 창원에서 출발해 넉넉잡아 40분이면 낙동강 본포교를 지나 학포수변생태공원길을 조우할 수 있다. 바람이 반갑고 포근한 걸 보니, 그날은 늦가을 만나는 날이었나 보다. 노르스름하고 불그스름한 가을 색감을 머금은 풍경에다 높고 선명한 하늘이 눈길을 잡는다. 그 뒤로 억새 부딪히는 소리가 보드라움을 더하며 가을강변 산책하는 묘미를 선사한다.

    엄마가 살았던 집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엄마가 아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몇십 년간 오가면서 온 생의 생채기를 아물게 해준 곳이라고 했다. 서 시인은 데크로 꾸며놓은 전망대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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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시인의 어머니가 살던 집.

    서 시인은 강변이 고맙다고 했다. “지금은 자전거길로 정비돼 편하게 강가에 서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예전엔 멀찌감치 서서 강물과 억새를 봐야 했어요. 강변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보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어요. 그러다 시상이 떠올라 이곳에서 시작(詩作)한 작품도 꽤 됩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 말 없이 보고만 있어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다섯 살의 그 어느 날부터 오늘까지 강물은 늘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한결같이 흐르면서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을 겪는 그 긴 세월을 포근히도 감싸줬다.



    절벽 같은 목마름이 불빛으로 타고 있다/객기도 결이 삭아 곱게 익을 세월이건만/마지막 칸타타처럼 저리 붉게 흐르고 있다/지상에 살았다는 흔적 하나 남기려고/누가 어등(魚燈)처럼 어둠속에 서 있는지/강물은 울컥거리며 하염없이 가고 있다 -‘가을 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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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여름이면 오솔길가에 기생초와 개망초가 활짝 피어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러나 서 시인은 가을의 강변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거칠고 객쩍게 부리는 용기마저 결이 삭아 곱게 익을 계절이라서란다. 결이 고운 바람을 만나 찰랑이며 존재감을 드러낸 억새는 여느 억새밭길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 소박함이 있다. 강변을 걸어보니 억새가 한몫 단단히 한 듯하다.

    엄마가 오매불망 도시에 나간 딸을 기다리던 그 공간은 어떤 곳일까. 궁금함에 서 시인을 재촉해 시골마을 언저리 옛집으로 발걸음을 뗐다. 아담하고 정갈했던 집은 엄마의 빈자리를 드러내듯 스러져가고 있었다. 엄마는 4년 전 오랜 투병 끝에 교육자로서, 작가로서 반짝이는 삶을 살던 딸의 곁을 떠났다. 서 시인은 장바구니 한가득 먹을거리를 싸 들고 당신을 만나러 가던, 엄마의 손때가 묻은 집을 차마 정리할 수 없어 두고 있다고 했다. 집이 제 빛을 잃어 안타깝다는 말에 서 시인은 “정리를 해야죠. 생전 엄마가 지내던 모습으로 다시 가꾸고 싶은데, 아직은 집안에 발을 들이려니 된 마음이 들어서 손보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슬픔을 꾹꾹 눌러 답했다. 엄마를 보냈지만 채 보내지 못한 마음이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묻는 질문에 지구촌 102개국 4만명의 사람이 ‘엄마’라고 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그런데 ‘엄마’라는 단어보다 마음을 더 찡하게 하는 단어가 바로 ‘친정엄마’다. 자신의 병든 몸보다 시집간 딸의 몸살을 더 걱정하는 이가 친정엄마 아니던가. 자나 깨나 자식 걱정에, 자기 몸 축내며 살아온 친정엄마를 한순간에 떠나보내는 이 힘든 시기를 서 시인은 시조로 사랑과 존경을 읊으며 보내고 있다.

    도심 속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뒤에도 바람에 서걱이던 강변의 억새가 눈에 잠잠하다. 그날 억새는 갈피 못 잡는 어느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는 듯 바람에 흩날리고 부대끼다 귓가에 속삭였다. 저처럼 살라고, 바람결에 제 몸을 온전히 맡기는 것처럼 우리네 삶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덧붙여 이별은 인간이 갖는 충격 중 최상위의 고통스러운 것이라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밀어내면 안 된다고, 가슴 아픈 이와의 이별도 당연한 삶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라는 고마운 도닥임에, 헤어짐에 힘든 오늘을 살아낼 위안을 얻는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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