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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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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국정 농단과 개명- 김상군(변호사)

  • 기사입력 : 2016-1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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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삼순이라는 주인공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불편함을 겪다가 이름을 바꾸려는 장면이 나온다. 삶은 여러 가지로 아이러니컬한 부분이 많은데 누구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듯, 삶에서 가장 개인적인 부분인 이름마저도 타인으로부터 부여받을 뿐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촌스럽거나 어감이 나쁜 이름도 있다. 또 처음에 지을 때는 좋은 뜻이었다가 100년 가까운 인생을 사는 동안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면 우연히 패륜아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필자의 어머니 또래 여성들 이름은 대부분 ‘자(子), 숙(淑)’으로 끝난다. 70년대생은 ‘지훈, 지영’이가 많다고 하고 지금은 ‘지우, 서윤’이 같은 중성적인 이름이 선호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보다는 세월 따라 유행에 맞는 멋있는 이름을 가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개명을 위해서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종래에 개명은 꽤 까다로웠다. 이름은 개인을 징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고 그 이름을 기준으로 모든 법률관계가 형성되므로 아주 특별한 사유 없이 이름을 바꾸도록 허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고려에서였다. 그러기에 파렴치범과 같은 이름이나 어감이 몹시 나쁜 이름, 이름을 공부에 올리면서 명백히 오류에 의해 잘못 등재된 경우나 누가 보아도 놀림감이 될 만한 이름이 아니라면 개명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국민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경향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한 번 정도는 개명을 허락하는 것으로 법원의 실무도 바뀌었다.

    살면서 불운한 일이 거듭되는 사람들은 점(占)집을 찾고 점집에서 ‘이름 때문에 삶이 꼬인다’는 말을 들은 후에는 무엇보다 먼저 이름을 고치고 싶어 한다. 근거는 없지만 모든 불행은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쓰고 있는 이름을 ‘맞지 않는 옷’처럼 생각한다. 그런 절실한 심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옷을 계속 입도록 강요할 수 없기에 어지간하면 그 소망을 이뤄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작금에 우리나라 상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처참하다. 매일매일 이른바 ‘비선실세’와 허수아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헌정을 파괴하면서 벌였던 만행이 드러나 도저히 뉴스나 신문을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자료를 미리 받아보고 어떠한 권한도 없이 제멋대로 고치고 정부 인사에도 개입해 ‘왕조시대에도 불가능했던 일’을 자행했다. 그들 대부분이 개명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신기한 일이다. 앞서 개명 이야기를 했던 것도 이런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국정을 농단했던 사람들이 이름 정도 마음대로 바꾸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필자는 저 사람들이 예외 없이 개명을 했던 이유나 이명(二名)을 넘어선 복수의 이름을 가져야 했던 이유도 궁금하다. 떳떳하게 살던 사람이 아니니 신분을 세탁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 새 이름을 택한 데에는 주술적 이유도 있지 않았겠냐는 추측도 해본다.

    이번 일로 학생, 취업준비생, 부모, 공무원, 기업인, 근로자를 포함한 온 국민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이유로 실망했다.

    부정부패, 무능과 오만을 넘어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무리들이 마음대로 반칙을 일삼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치열한 경쟁을 뚫으려 노력했던 국민들은 지독한 열패감을 맛보고 좌절했다. 국민들 중 누군가는 열심히 해도 되지 않았을 때 ‘이번 생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기에 이번 생에서는 어려우니 대신 이름이라도 바꿔서 반전을 노리려고 소망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이름을 바꾸었던 사람들의 좌절을 그들이 짐작이나 했을까? 이름 한 번 바꾸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서민들의 심정을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김상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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