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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김해가 가야사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허충호(정치부 김해본부장·국장)

  • 기사입력 : 2016-1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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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시 봉황동은 지난 1907년부터 60여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조개껍질무지인 패총과 토성의 흔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전해진 것처럼 기원전부터 서기 532년까지 세력을 떨친 금관가야의 도성 존재를 입증할 유물은 아직 지상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1899년에 발행된 ‘김해군읍지’에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라는 기록이 있다지만 유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카 (Edward Hallet Carr)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라고 정의했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고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는 상호작용이라는 게 그의 역사관이라고 이해한다.

    카의 관점에 비춰보면 김해의 미래사는 금관가야의 찬란한 문화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 김해시가 도시브랜드 슬로건을 ‘가야왕도 김해’로 정하고 대대적인 브랜드 이미지메이킹을 하면서도 김해를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에 기반한 제4차 산업혁명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고대사에 집착하면서도 끊임없이 번영의 미래를 꿈꾸는 도시, 그게 김해인지는 모르겠다.

    일부는 고색창연한 역사의 흔적을 도시브랜드로 내세우면서 최첨단 IoT에 기반을 두고 산업혁명지를 지향하는 것에 어색함이 느껴진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구체적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김해가 과연 알려진 바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고대 도시인가 하는 의문점을 저변에 둔 의견들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신라나 백제문화권처럼 시대사를 추정할 수 있는 뚜렷한 유물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니 그런 의문을 갖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의 범주에 속한다.

    전해지는 바와 같이 왕성의 유적은 아직 발굴된 바 없다. 왕성이 있었다는 사료적 자료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60여 차례 발굴만 진행되고 있다. 내년부터 왕성터 발굴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하니 일단 지켜볼 일이다.

    물론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김해가 가야권 중심도시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해는 아주 오랜 기간 고대중심도시로서의 자긍심을 도시 근간에 깔고 있다. 수로왕릉을 중심으로 가야유적을 복원 유지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 왔고, 그런 작업들은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가야주제공원과 고분박물관, 국립박물관 등의 현대의 시설들은 고대 김해를 현세로 연결하는 끈이자 과거와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도 물음표를 찍을 일은 있다.

    카의 말처럼 역사를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라면 현재의 김해가 가야사에서 찾아내야 할 ‘다른 시대의 기록’은 과연 무엇인가. 김해의 미래는 가야사 또는 가야와 과연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할 것인가. 현재의 김해가 고대 가야에서 진정 주목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김해서 또다시 고대유적이 발굴됐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물음이다.

    허충호 (정치부 김해본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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