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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거창 출신 김옥상 대방운수 회장

어릴적 못 먹고 못 배운 한을 ‘사랑나눔’으로 풉니다
1968년 거창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기술 배워 집안 일으킬 각오로 부산 와

  • 기사입력 : 2016-12-1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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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의 척도는 무엇일까? 흔히 ‘성공한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러나 성공하면 다 행복한 것인가.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도 있다.

    추운 겨울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에 따뜻한 차(茶)가 그리워지는 시간에 부산에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인물인 김옥상(62) 회장을 만나 인생역정을 들었다. 사무실 사방은 회장 명패와 각종 사회단체서 받은 상장 등으로 꽉 차 있었고, 김 회장은 넥타이에 정장 차림도 아니고 60대 나이임에도 열정으로 직원들과도 격의 없이 서서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소탈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기어코 성공을 일궈냄으로써 요즘 젊은이들에게 전범(典範)이 될만한 인물이 우리 지역에 있었다.

    명함을 받아보니 사업체가 대충 봐도 6개다. 대상운수, 대방운수, 거북운수, 동래정화, 연제정화, 대방환경, 일박이일렌트카만 명함에 있고 명함에 없는 사업체가 무려 22개나 된다. 그야말로 그룹이다. 그동안의 이력이 묻어나며 권위보다는 편안함을, 격식보다는 내실에 무게를 두는 모습으로 소년 같은 순수함과 사람 냄새가 물씬 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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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상 대방운수 회장이 사업 과정과 삶의 철학 등을 얘기하고 있다./김한근 기자/
    ◆아버지로부터 철학과 마인드를 배우다

    김옥상 회장은 1954년 거창 가조면 작은 산골마을의 가난한 집안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 회장에게 세상의 큰 그림을 보게 해 준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재산이라고는 논밭 하나 없고 더부살이하면서 누에치기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일본서 공부를 하셔서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제가 거창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단돈 2만원 가지고 1968년 버스로 장장 16시간 걸려 부산에 처음 왔습니다. 못 배운데다 먹고살 양식도 없어 기술이라도 배워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로 괴나리봇짐 메고 온 것이죠. 라스베이거스처럼 불빛이 화려했던 부산 충무동 로터리에서 처음엔 월급도 못 받고 있다가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자동차부품, 버스, 화물차로 여지껏 기름밥을 먹고 있는데, 같이 기름밥 먹는 식구들도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 되겠다. 못 배운 한을 풀어야겠다. 그래서 화물운전자 자녀 장학사업 등 복지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김 회장은 어릴적 과거를 회상하자 감정이 북받쳐 눈시울을 적시며 잠시 상념에 잠겨 말문을 닫은 채 천장을 쳐다보면서 “정말 참 고생 많이 했다. 처음 부산 와서 온천장에서 솥단지 걸고 정비공장에서 기술을 익혀서 버스회사 사장 될 거라고 했는데 1973년 버스 특별조치법으로 버스회사가 통합돼 할 수 없이 화물차 정비기술을 배웠다”며 “지금 이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그때 그렇게 고생한 덕분”이라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저한테 귀에 못이 박히게 한 말씀이 절대로 약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없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는다. 그러니 약자한테는 베풀고 살아라,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어릴적에 우리집에 거렁벵이(문디)가 자주 왔었다. 그래도 우리 부모들은 한 번도 내치지 않았고 올 때마다 정성스럽게 식사대접을 했다. 제가 고향분들 참 취직 많이 시켜드렸습니다. 거창은 말할것도 없고 함양, 산청, 합천 등 이웃분들도 다 고향분들이다. 지금은 그분들도 성공해 한번씩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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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대상운수 설립과 운전자 복지재단 장학금 지급

    김 회장은 1987년에 대상운수 설립을 시작으로 지금은 22개의 법인회사를 거느리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대인 1000여대 화물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장을 2004년부터 3대에 걸쳐 9년 동안 역임하면서 “기름밥 먹고 자수성가했다”며 같이 기름밥 먹는 화물차 가족들의 복지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화물운전자가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운송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화물운전자복지재단을 2007년도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복지재단은 운전자 자녀 1500여명에게 10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재단 설립 이래 총 35억3600만원의 장학금을 4444명(고교생 1816명, 대학생 2628명)에게 지급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화련·공제조합도 505명에게 5억3000만원을 전달했다.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공제조합의 장학사업은 그간 10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화물가족의 장학사업은 성적 위주로 장학생을 선발하는 다른 데와는 달리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경제사정으로 학업에만 전념할 수 없는 화물운전자 자녀들의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장학금뿐만 아니라 중·고생 교복까지 맞춰 주려고 한다”며 “화물운전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라도 화물차 주차장 마련이 시급하고, 주차장이 없다 보니 길가에 주차하는 일이 잦고 도난 등에 대한 우려로 운전자들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길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강조했다.

    “밤낮없이 일하는 화물운전자들을 위해 정부가 마음을 달래주고 베풀어 줘야 한다. 경남에 있는 중공업 업체의 그 많은 물건들 화물운전자들이 책임지고 다 실어 날라야 되지 않느냐. 정부서 할부이자와 세율을 좀 낮춰주고 진정으로 가슴으로 어머니 품처럼 안아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신한금융그룹과의 제휴를 통해 제1금융권 최초로 조합원 전용 저금리 사업용 화물자동차 대출상품을 공동으로 개발해 조합원의 복지향상과 사업용 화물차량 구입시 금리혜택을 볼 수 있게 했고, 16만 일반화물 차주의 경제적 부담을 다소나마 덜어 주게 된 것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또 경찰청과 ‘착한운전 마일리지제’ 업무협약(MOU)을 맺어 화물운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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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은 어머니의 품

    “사람은 동물처럼 귀소본능을 지니고 있어요. 거창은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에요.” 김 회장은 부산에 있지만 고향인 거창을 자주 찾는다. 1990년부터 무려 26년 동안 거창지역 초·중·고등학교와 지역 주민들에게도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가조초등학교 42회 졸업생인 김 회장은 그동안 모교인 가조초등학교에 교육용 카트, 컴퓨터, 체육인재 양성을 위한 물품 등 각종 행사 후원으로 고향 후배들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해 오고 있으며, 해마다 거창군민 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마련하고 고향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기탁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매년 개최되는 면민체육행사에 빠짐없이 기금을 전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후배양성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진 모범적인 향우로 이미 지역에서 기부천사로 통한다.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고향 후배들이 꿈을 펼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후배들에게 “꿈을 가져라,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라”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고향 후배사랑은 자신의 어린 시절 못 먹고 못 배운 서러움을 후배들을 통해서라도 한을 풀기 위해서다. 그는 후배들에게 “게으르면 성공할 수 없다. 큰 꿈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 성공한 사람이 돼 달라. 성공한 기업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물려받은 금전적 밑천도, 그렇다고 행운도 아니었다. 오로지 ‘하면 된다’는 정신이었다. 옳다고 판단되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결행하라”고 얘기한다.

    김 회장은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부지런히 뛰는 사람은 못 당한다”며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성공의 비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한근 기자 kh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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