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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할머니- 최성보(마산수협 상임이사)

  • 기사입력 : 2016-12-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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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이맘 때인 것 같다. 수협 은행에 근무할 때였다. 나이가 육십이 훨씬 더 돼 보이는 할머니가 대출 상담을 하러 왔다. 일상적으로 연령이 높으면 웬만한 신용대출은 적당한 핑계로 거절하기 마련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서 할머니의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 중인 하나뿐인 딸의 학비를 붙여줘야 하는데 요즘 장사가 안 돼서 대출을 받아서 보내 주려고 했는데 은행에 가니 아무도 대출을 내주지 않는다”며 “꼭 좀 부탁한다”고 공손히 이야기했다.

    어디서 무슨 장사를 하시느냐고 물어봤더니 경남대학교 오거리 앞에서 포장마차 30년을 해 오셨다고 했다.



    초저녁에 장사를 시작해 다음날 이른 새벽까지 한다고 했다. 그리고 1년에 단 하루도 쉬어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돈 안 떼먹을 테니 꼭 좀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실질적으로 처음 보는 분이고,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괜찮은 직종도 아니고, 나이도 좀 많아서 은행원의 상식으로는 대출을 실행하기에는 왠지 마음 한구석이 껄끄러웠다.

    물론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할머니에게는 너무나 간절해 보여서 단번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퇴근 후 며칠을 할머니 포장마차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혼자서 리어카를 끌면서 참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한편으로 측은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서민금융이 존재하는 것은 정말 저런 입장에 놓여 있는 힘 없고 백 없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한 존립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의 융통성을 발휘해 필요한 액수를 대출해줬다.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포장마차에 꼭 한 번 오라고, 찬바람 불 때 따끈한 우동 한 그릇 말아 줄 테니…”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기원해본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착하고 바르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행복한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사람은 살아가는 방법에 따라 행복의 척도가 다른 것 같다. 조그마한 일이지만 상대방이 기쁘고 즐거우니 내 마음도 홀가분하고 얼마나 좋았던지.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난 다른 부서로 옮겼고, 어떤 할머니께서 찾는다고 해서 가보니 포장마차 할머니였다. “물어서 물어서 찾아왔다”고 하면서 “덕분에 우리 딸은 공부를 다 마쳤고, 딸에게 이야기했더니 귀국하면서 영국제 오리털 조끼를 사주더라”면서 “작으나마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달라”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도 괜찮은 삶인 것 같다. 아주 사소하고 조그만 것에서 사람은 보람과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도 찬바람이 불 때면 그 조끼를 입는다. 포장마차 할머니의 환한 미소와 따스함이 내 가슴을 더 따스하게 한다.

    온 나라가 시끄럽다.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너와 나의 이권을 떠나서 모두가 한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가 돼 화려하지 않지만 작은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끼는 포장마차 할머니처럼 그런 대한민국이 빨리 왔으면 싶다.

    최성보 (마산수협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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