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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 가련촉망(可憐觸網)- 불쌍하게 그물에 걸렸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6-12-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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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때 벼슬을 하던 두영철(杜英哲)이 있었다. 어떤 일에 연루돼 충청도 서천군(舒川郡) 장암진(長巖鎭)으로 귀양을 갔다. 그곳에서 어떤 노인과 친하게 지냈다.

    다시 불려 조정으로 돌아가게 되자 노인이 “앞으로는 구차하게 벼슬에 나가려고 하지 마시지요”라고 말하자, 두영철도 “그래야지요”라고 대답하고 돌아왔다.

    귀양살이하는 동안 갖은 고생을 한 두영철은 벼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얼마 동안 지냈다.

    그러자 다시 임금이 괜찮은 벼슬로 불렀다. 출세욕도 작용했겠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노인과의 약속을 잊고 다시 벼슬에 나갔다. 승승장구해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평장사는 오늘날의 부총리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이다. 그런데 또 죄에 얽혀 다시 귀양을 가게 됐다. 지난날 귀양살이하던 장암을 지나가게 됐다. 그 노인이 나와 전송하면서 이런 시를 지어주었다.

    움츠린 참새여 너는 무엇 하려는가/그물에 걸린 참새 노란 부리여./눈 구멍은 원래 어디 있는가/가련하다 그물에 걸린 어리석은 참새여.(拘拘有雀爾奚爲, 觸着網羅黃口兒. 眼孔元來在何許, 可憐觸網雀兒癡.)

    본래 우리말로 부른 노래인데, 고려 후기 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번역한 한시가 ‘고려사(高麗史)’에 실려 있다.

    표면적으로는 먹이를 탐내다가 그물에 걸린 참새의 상황을 불쌍히 여겼지만, 실제로는 벼슬 좋아하다 죄에 빠져 처벌받는 사람의 신세를 풍자한 작품이다.

    대한민국에 지금 전문대학 교수까지 다 포함해서 교수 노릇하는 사람이 5만명 정도 된다.

    그런데 가끔 교수 가운데서 국무총리도 나오고 교육부장관 등 장관도 나온다. 정부 부처의 국장으로 가는 사람도 가끔 있고, 심지어는 과장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국회의원에 당선돼 활약하는 교수들도 있다.

    별 영향력이 없던 자리에서 무슨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 얻어 가서 만족해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교수를 부러워하는 교수도 많다. 한자리 하다가 돌아온 교수들은 학내에서 거물급 인사로 대우를 받는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유독 교수들의 발탁이 많았다. 그 방면에 특출한 능력이 있어서 발탁돼 일을 하면 자신도 떳떳하고 나라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대부분은 연줄·청탁을 통해서 한자리를 얻는 경우가 많다.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이후로 교수 출신의 고위직들이 구속되거나 청문회에 불려나가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소속 대학에서는 학생들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먹이를 탐내다가 거물에 걸린 불쌍한 참새의 모습과 흡사하게 됐다. 한때의 출세를 위해 덤벼들었다가 몰락한 지금, 그들은 교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교수들이 부러울 것이다.

    *可 : 옳을 가. *憐 : 불쌍히 여길 련.

    *觸 : 닿을 촉. *網 : 그물 망.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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