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작가칼럼] 새해엔 찬란한 태양을 맞고 싶다-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16-12-30 07:00:00
  •   
  • 메인이미지

    한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한 장 남은 달력은 미풍에도 흔들리는 겨울나무의 마지막 잎새 같다. 근육질 좋은 세월과 맞짱 떠 본들 뒷다리 하나 걸어 넘어뜨릴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져 본 사람들은 일찌감치 순종부터 배웠다. 그러니 서산마루에 걸린 해를 바라보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마무리란 잘해도 미련의 보자기에 싸서 아쉬움의 노끈으로 칭칭 묶어 허탈의 선반에 올려놓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며칠 남은 한 해는 역으로 말하면 며칠 남기고 잘 살았다. 쓸개를 빼서 벽 박에 걸어놓고 살았던, 맨 속에 잠을 설쳐 술병을 끌어안고 살았던, 끊었던 담배를 도로 물었던, 잘 견뎌내며 무탈하게 살았다. 잘 이겨냈다. 아름답게 인내했다. 도저히 맨 정신에 이겨내기 힘든 한 해였기에 더욱더 장하다. 시커멓게 탄 속이야 새날이 오고 시간이 가면 치유될 것이니 실개천 같은 기대라도 따라가다 보면 희망의 바다를 만나겠지.

    사회가 어수선하고 시국이 혼란스러우니 그 틈을 타 부추기는 세력들이 눈에 띈다. 경기는 바닥을 기고 청년실업자 늘어만 가는데 뚜렷한 대책도 없다. 국가안보마저 골다공증에 걸려 구멍이 숭숭 뚫려 황소바람이 드나든다. 한 개인의 국정농단이 나라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아 국민들이 멀미를 앓고 있는데 정치권은 대안 마련은 고사하고 당파싸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친박이니 친문이니 서로 편을 갈라 으르렁거리는 꼴을 보면 지하에 누워 계시던 김구 선생께서 벌떡 일어나고도 남을 일이다. 정치는 사라지고 정치인만 득실댄다. 총체적 위기가 따로 없다. 참으로 저런 꼴 보려고 투표했나 자괴감이 든다. 나라꼴이 이러한데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는 사람도 책임질 사람도 없다.

    부모도 자식도 없어 나라와 결혼했다던 대통령은 탄핵으로 나라와 파혼당했다. 대통령 탄핵은 국가와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지 축포를 쏘고 축제를 벌일 일은 아니다.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았으니 그 손가락에 장 지지는 심정으로 자숙하며 가슴을 쳐야 할 판이다.

    누워서 뱉는 침이 어디로 가겠는가. 믿은 도끼에 찍힌 발등의 상처가 고통이 극심하고 쉬 아물지도 않는 까닭은 마음을 더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갈 길이 먼데 주저앉아만 있을 수 없으니 절룩거리면서도 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저기서 송년회가 한창이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갈 해를 밀어내는 기분이다. 상처투성이로 중환자실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병신년의 산소마스크를 하루빨리 제거하고 싶은 것인가. 하지만 상처가 상처를 보듬어야 더 큰 상처를 낳지 않는 법이다. 고름이 생긴 종기를 도려낸다고 병이 치유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원인을 파헤쳐 완치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한다.

    망가진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이 최우선이다. 정치권은 총체적 위기의식을 인식하고 협치로써 나라를 정상궤도에 올리도록 수습과 대안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올해의 끄트머리를 시커멓게 촛불로 태웠으니 밝아오는 새해엔 찬란한 태양을 맞고 싶은 게 상심한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김시탁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