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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반쪽 지구본- 안은숙

  • 기사입력 : 2017-0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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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쪽 지구본- 안은숙



    거리를 배회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느리게 아주 천천히 걸었다. 저녁 어스름에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갔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어쩌면 참 다행이라 여겨졌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누군가 내다버린 반쪽의 지구본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우묵하게 파인 반쪽의 지구본, 마치 분화구 같기도 하다. 그 안엔 반나절 동안 내린 빗물이 얌전하게 고여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지구본 속엔 온갖 난파된 배와 격렬한 해전들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듯 고요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다녀온 나라들은 없었다. 모국을 찾아보려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나머지 반쪽의 지구본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인 빗물은 쏟아버리고 나는 반쪽의 지구본을 품에 안았다. 집으로 가져왔다. 기울여도 기울여 봐도 밖으로 쏟아지지 않는 세상이 어쩌면 나를 꼭 붙들고 있다는 생각, 나를 따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집 현관 입구 허리 높이의 선반 위에는 반쪽의 지구본이 있다. 오다가다 건드리면 아슬아슬 흔들리거나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나는 이 속에 무언가를 자꾸만 들어앉혔다. 초승달 모양으로 기우는 브래지어를 넣어두거나 새로 산 살구색 스타킹을 넣어두었다. 가끔은 서랍이 되기도 하고, 액세서리 보관함이 되었다가 은행 창고가 되는 날도 더러 있었다. 동전을 담아둔 날엔 여러 나라들이 그 안에서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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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날엔 발리섬의 날씨를 빌려다가 껴입고 외출하고 싶었다. 약속이라도 생기는 날엔 갈라파고스제도를 닮은 스타킹 하나를 꺼내 신고 나갔다. 그런 날이면 나는 또 어김없이 다른 반쪽의 지구본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궁금해졌다. 나의 모국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을 떠돌고 있을까. 어딘가에 분명 엎어져 있거나 뒤집어져 있을 것이다. 세상 수상한 날들의 연속이다. 마음의 안정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따라온 반쪽 지구본 앞에서 하릴없이 한참을 서있는 버릇이 생겼다. 여러 나라 앞에서 머뭇거릴 때가 참 많았다. 그러다 그리웠던 정서를 찾곤 했다. 혼자 옛 거리를 찾아다니거나 나의 첫 작품인 오디오로 음악에 젖어 마음을 달래거나 아무도 듣지 않는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한 장 한 장 악보를 뒤적거리다 마음이 뭉클해졌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 나는 이 곡을 여러 차례나 수도 없이 연주했다. 광화문연가에 푹 빠지게 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 초입도 훌쩍 넘어섰다. 가슴 뭉클해져서 다시 찾은 광화문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꽉 차 있었다. 내 손엔 손을 맞잡았던 연인도 없다. 다만 촛불만이 들려져 있다. 오월의 향긋한 꽃 대신에 노란 리본이, 촛불과 내 가슴은 금세 타들어갔다. 반쪽의 지구본을 감싸 안고 집에 온 날이 혼자 거리를 배회했던 날이었다면, 지금은 물결을 타듯 많은 인파 속에서 내가 섞여 걷고 있는 날이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감정이 밀려든다.

    광화문에 서있었다. 등잔 접시 위에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주(主)자의 모습으로 나는 이 광장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나는 오래 이 자리를 지켰다. 또 다른 뭉클함이 가슴깊이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세상은 모르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나라들이 이미 지구상에 있었고, 내가 가방을 메고 등교한 날로부터 세계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여러 나라에 대해 암기를 하고 확인을 받고, 많이 알면 알수록 그만큼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 그 무엇들, 그 무언가는 수수께끼처럼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

    모름을 알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모여든다는 것은 분명 기분이 좋은 일일 수도,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의 뜻을 이뤘다. 말씨와 식성과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드는 세상이다. 낯선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어디에서는 햇볕에 그을린 사람들이 자꾸만 집 밖으로 도망치려 한다. 이미 하나인 것들은 더 단단히 뭉치려 하고 어긋난 것들은 서로가 두 갈래로 갈라지려 한다. 뜻 하나로 하나가 되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한 공간의 소통의 부재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나는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갈등을 꽤 오래 겪었다. 가슴에 꽂히는 눈동자를 보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맹목적인 얼굴을 거느리면 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부릅뜨기 예사였다. 미간은 나도 몰래 찌푸려지고 금세 힘은 빠졌다. 마침내 침묵으로 들어가 굳게 닫혀 있는 입술, 어느 누구에게도 그 속마음은 읽지 못한다.

    사람의 얼굴 속에는 수천 겹의 마음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소통이 없으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반쪽이다. 너무 오래 앓았다. 많이 지나쳐왔고 그 사이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거리를 혼자 배회하지 않았다. 다시 찾아와 본 광화문 거리, 그곳에서는 긴 행렬이 있었다. 그 틈에서 걸었다. 행진은 질서정연하며 아름다웠다. 촛불의 향연은 어두운 밤을 찬란하게 수놓았다. 가족과 연인과 동창과 단체가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던 밤, 뜻 하나로 하나가 되었다가 각자 아늑한 공간으로 돌아가는 밤이다.

    현관문을 여니 모처럼 텅 비어 있는 반쪽의 지구본이 흔들거린다. 그처럼 나도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많이도 허전함을 느꼈다. 점점 더 나는 손톱과 머리카락을 키우고 굽어지는 등을 갖게 될 것이다. 어눌한 말씨로 느리게 말을 할 것이며 지금보다도 더 느리게 걷게 될 것이다. 저녁 무렵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듯 그렇게 젊은 나도 저물어 갈 것이다.

    반쪽의 지구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일생 넘치고 넘쳐서 반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아닐까. 나의 반쪽은 없다. 설사 찾는다 해도 감쪽같이 이어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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