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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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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 같이 따뜻한 밥 한끼 하실까요?

  • 기사입력 : 2017-0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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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인 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식사하러 나오세요~. 오늘 메뉴는 오뎅국이랑 양념게장이에요~. 얼른 나오세요~!”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이면 사회복지사가 방방마다 뛰어다니면서 보호자들과 함께 식사하실 수 있는 환자분들을 모시고 다이닝룸으로 온다. 일주일에 한 번, 의원은 밥 짓는 냄새와 갖은 양념 향으로 ‘맛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간호부장은 30년간 다진 노하우를 발휘하는 요리사가 되고, 다른 직원들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온 밑반찬을 하나씩 모아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그 시간,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진정한 ‘식구’가 된다.

    처음 호스피스 클리닉을 설계하면서 ‘다이닝 룸(dining room)’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가 밥 먹을 공간은 있지만 가족들이 왔을 때 함께 앉아서 밥 먹을 공간이 없어서 불편했던 기억과 함께 밥을 먹는 ‘식구’의 느낌을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서 보호자들은 슈퍼에서 사온 즉석밥이나 컵라면을 끓여 먹고, 포장음식을 데우거나 환자가 남긴 밥을 먹고 있었다. 긴 간병생활 동안 병원 내 보호자용 식사를 이용하기보다는 인스턴트 식품과 함께 몸을 축내고 있는 보호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회진을 도는 데 환자의 대학생 아들이 다이닝룸에 앉아 즉석밥과 김, 김치를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사회복지사가 기막힌 제안을 했다. “우리 집밥데이를 하면 어떨까요? 다이닝룸에서 밥하고 집에서 밑반찬 하나씩 들고 와서 도시락 먹듯이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메인반찬만 하나 직접 만들고요.”

    그렇게 우리의 ‘집밥데이’가 시작됐다. 매주 목요일, 입원하고서 스태프들과 서먹서먹하던 보호자들도 밥을 함께 먹으면서 숨겨왔던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았다. 서먹하던 옆방 보호자나 환자들과도 서로의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마음의 걱정거리와 위로를 교환했다. 혼자서 밥 먹기 심심하다던 할머니도 그날만큼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내 식구 네 식구 없이 우리 모두 한 식구가 되는 날이 바로 목요일이다.

    처음에는 얻어먹어도 되는 건지 쭈뼛쭈뼛하시던 분들이 이제는 목요일 아침만 되면 오늘 메뉴는 뭔지, 뭐 도와줄 건 없는지 물어보시고, 맛있는 걸 해주고 싶다며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기도 하신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단지 말기 암 환자만을 위한 의료가 아니다.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의료이다. 오랜 간병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거란 두려움에 지쳐 있는 가족들의 마음까지….

    며칠 전에는 돌아가신 환자의 보호자가 찾아왔다. 목요일 집밥데이 때 와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먹고 싶었는데, 일이 있어서 다른 날 오게 되어 아쉽다, 다음에 꼭 한 번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겠다, 감사했다며 인사를 하고 가셨다.

    만남은 늘 소중하다. 수천 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수만 가지 아픔을 가지고 호스피스 클리닉을 찾는다. 아픔이 깊기 때문에 의료진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날을 지새우기도 하고, 도움의 손길을 외면해 더 외로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마음을 열어 따뜻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래서 환자 가족들에게 진정한 가족, 식구가 되어드리고 싶다. 같이 밥 한 숟가락 뜨면서 지친 마음 위로해드리고 싶다.

    “이번 주 메뉴는 떡국이에요. 새해에도 밥 잘먹고 힘냅시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영인 (희연호스피스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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