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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국가 권력과 결별해야 할 때- 우무석(시인)

  • 기사입력 : 2017-01-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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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행정 관료 조직 가운데 한 곳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문화체육계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정부 조직은 무엇보다도 우선해 자체의 권력만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헌법 제1조 항목을 들이댄다면 참한 모범답안일 뿐이다. 권력은 당연히 집권자에게 있다.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인 박근혜라는 한 개인이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형편에서 현 정권에 대들거나, 비꼬거나, 비판하는 일은 금기를 깨는 위험천만하고도 불온한 행위이니 어찌 제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의당 그런 인사들쯤이야 국가의 통치권 차원에서 관리해야 될 대상이므로 리스트의 작성은 그들의 고유한 업무가 돼야 마땅한 것일 터. 그러나 박 대통령의 권력은 보아하니 전제주의적 절대성이 담보되지는 않은 것 같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을 받아 직무가 정지된 것만 보더라도 그 권력은 너무나 한정적이다. 추상적이면서 애매모호한 용어인 ‘국민’이란 이름을 내세우는 국회의원과 자극적 선정성을 앞세워 의심스러운 추측을 진실처럼 포장해 쏟아내는 언론 방송도 대통령의 권력보다 더한 권력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세상의 살아 있는 권력이란 게 어느 때는 요리조리 움직인다는 사실만 확실해 보인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의 첫 번째 축으로 ‘신체의 정치해부학’을 거론했다. “신체의 유용성과 순종성을 병행적으로 증가시켜 신체를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통치체제에 동화”하게 만드는 것이 규율권력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판옵티콘의 원리를 내세운 조직을 통해 개인을 감시하며 규율과 규범에 젖어들게 훈련시키는 방법이다. 판옵티콘이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감시시설인데, 여러 개의 독방들로 나뉜 원형의 건물 중심에 감시탑이 있고 그 탑 속의 감시자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감시대상만 노출되게 한 구조물이다. 그러므로 판옵티콘에 갇힌 죄수는 자신이 끊임없이 감시받는다는 의식 때문에 규율을 위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규율권력을 내면화시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규율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신체는 기계처럼 통제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고, 조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권력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따라 개인을 감시하고 조사하면서 등급매기기와 서류작성에 의해 분류하기도 한다. 푸코는 이를 ‘생명관리권력’이라고 부르면서 자본주의의 발달에 있어서는 필연적 결과라고 단언했다. 예를 들자면 권력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출산율을 셈하면서 불임시술을 장려하거나 여러 보장 제도를 만들어 출산을 독려하는 것도 모두 정치 기술의 신체적 규율인 셈이다. 그런 관리권력과 정치의 기술은 국가의 순기능적인 통치권 확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작동하면서 존재한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청와대나 문화체육관광부 관련자들은 비겁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다.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했던 주요 관련자들은 특검의 사실 확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괄호 속에 숨겨둔 채 실재의 핵심을 생략하거나 회피하면서 적대적 관계의 주변인들에게 입막음만으로 사건 자체를 가리려고만 한다. 블랙리스트의 작성 또한 부정적이긴 해도 정부 차원의 관리권력이 발동된 거라고, 문화예술인의 지원 배제 역시 규율권력의 길들이기 정치 기술이라고 억지라도 부렸더라면 차라리 마음이 답답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번 파문이 불유쾌한 이유는 ‘문화융성’이란 화려한 수식의 외피 안쪽에는 문화예술인을 이편저편으로 갈라놓고 최고권력자의 기분만 살피는 관료로 인해 한 나라의 문화적 자존감이 상처받았다는 데 있다. 지원을 받지 않는다 해서 시인이 자신의 문학을 포기하겠는가, 연극인이 무대를 버리겠는가. 지금 문화를 담당한 행정부는 마치 악성 세균에 감염된 좀비 집단처럼 여겨진다. 이젠 문화예술인이 국가 권력과 결별해야 할 때가 됐다.

    우무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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