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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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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인연, 우리가 살아가는 힘- 이문재(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7-01-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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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첩을 새로 샀다. 원래 수첩에 적혀 있던 것들을 새 수첩에 옮겨 적으니 난 조금씩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어느 이름을 지우고 어느 이름은 남겨둘 것인가. 그러다가 또 그대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은 이름 그대로 똑똑한 기기 (機器)다. 내 기억에서 이미 사라진 내용들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론 내가 만지작거려 남긴 기록이지만, 가끔 무섭기까지 하다. 특히 잊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발견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나의 스마트폰 활용도는 그다지 높지는 않다. 전화번호 저장이나 일정메모, 문자 주고받기 정도다. 그래도 오고 간 기록을 쌓아두는 편이라, 개인의 약사 (略史)가 되기에 충분하다.

    ‘살아 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 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해가 바뀌고 한가한 어느 날, 폰에 무엇이 담겼는지 되돌려 봤다. 간단한 일정, 연락처, 오고 간 문자들. 곰곰 기억을 떠올려보니 웃음도 한숨도 나온다. 연락처에는 안타깝게도 지난해 고인(故人)이 된 사람도 있다. 어떤 이유였는지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물론 나도 하지 않았지만. 지워야 하나, 그대로 둬야 하나.

    ‘살아 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이다.’ 그대로 두기로 했다.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고, 폰에 남겨둔다고 해도 불편한 것은 없다. 언젠가 전화가 울릴 때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스쳤던 사람이라면 의미가 크든 작든, 좋았든 나빴든 어쨌든 인연(因緣)이 아닌가. 생활하는 품도 그리 넓은 것도 아닌데, 굳이 정리하는 깔끔을 떨 이유가 있을까 싶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 싶은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남겨준 사람.’ 연락처에는 남아 있지만, 지금은 서로 소식을 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도 한때는 내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존재였을 것이다. 애절하게 그립다든가 죽고 못 사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지만, 잠깐씩이나마 얼굴을 맞대고 웃음과 기쁨을 같이했던 사람이다. 아무 일 없이 덤덤히 지내다가도 연락이 오면 수다도 떨고 반가워할 그런 사람이다.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 벗어나 나 이제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네.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다. 소중한 사람은 곁에 있을 때는 그 귀함을 모르다가 떠난 후에 안다는 뜻이다. 나의 무심함과 게으름으로 지금껏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떠나갔을까. 또 남남처럼 머물다 사라질 인연은 또 얼마일까. 인연이 떠나가고 사라지는 게 결코 두려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게 삶의 궤적(軌跡)인데, 무감각과 무신경이 아쉬울 뿐이다. 한 해의 시작이다. 스쳤던 인연을 들춰내고, 또 새로운 인연도 만들어 가자. 그로 인해 행복과 풍요로움을 느껴보자. 따옴표(‘ ’) 안 글은 이해인 시인의 ‘인연의 잎사귀’다. 인연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쳐지는 시절이라, 울림이 더하다.

    이문재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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