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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소통과 화합이 필요한 시대

  • 기사입력 : 2017-01-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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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공스님 (창원 구룡사 주지)


    정유년 붉은 닭의 새해가 밝았다. 언제나 새로운 출발에는 희망과 기대감이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은 대통령 탄핵 문제와 나라 안팎의 정치·경제적 어려움으로 그리 평탄치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을 바로 직시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때로는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뒤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삶은 늘 갈등과 반목이 넘쳐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현재 나라의 혼란스런 일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소통’과 ‘화합’이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 던져진 하나의 화두처럼 받아들여진다. 소통은 흔히 서로의 뜻이 잘 통하는 것을 의사소통 혹은 생각의 소통이라고 한다. ‘소통’이 가진 뜻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나 가정의 구성원 간에 소통이 단절되어 버리면 갈등과 시비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살아갈 순 없지만, 서로의 생각하는 바를 이해하고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소통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며 일부 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의 결과가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 모습 역시 소통의 부재로 인해 생긴 현상으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 정책을 비롯해 사드배치 문제도 국민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인 정책결정을 내리거나 시행을 하게 된다면 국가정책에 대해 국민들은 신뢰를 보내주지 않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혹시나 상대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싶어 다른 각도로 이야기하다 보면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상대와 의사소통이 단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가 우리 사회에 소통과 화합이라는 문제의식을 갖도록 한 것은 매우 신선한 발상이다. 사회구성원 간에 소통이 원활히 이뤄질 때 화합된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화합은 부처님이 교단을 형성하면서 늘 강조하셨던 가르침이었다. 화합이라는 말은 서로 조화롭게 하나의 세계를 이뤄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생각이 서로 소통되며 다투지 않고 행동에 절도와 예절이 있어 서로가 불편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기 이전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하심(下心)하는 마음자세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주장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화합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언제나 “마치 물과 우유가 하나가 되듯이 화합된 삶을 살아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승단에서 가장 엄격히 다스려졌던 규율이 화합이다. 그래서 대중의 화합을 깨트리는 자를 승단에서 축출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의 지혜를 모으고 서로를 위해서 노력할 때다. 국가나 사회 그리고 가정이 소통하고 화합할 때 이룰 수 없는 일들도 성취할 수 있고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들이 화합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지중심적인 생각만 하는 아집과 자기 생각과 행동만이 최고이고 남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좁은 생각 때문이다.

    부처님은 세상이 화합된 하나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남을 위해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둘째, 언어의 행위에 있어서는 늘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을 사용해야 하며 셋째, 내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이익을 줘야 하며 넷째,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을 가져 즐거움은 함께 나누고 괴로움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진정한 화합이 이뤄진다고 하셨다. 신공스님 (창원 구룡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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