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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1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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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진해 겨울 포구 탐방기] 눈부시게 시린 겨울 포구

낭만과 함께 걷다, 추억이 따라온다

  • 기사입력 : 2017-01-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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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밖을 나서기가 두려워지는 때다.

    겨울 추위는 만물의 활동을 멈추게 했다.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요 관광지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대신 온풍이 나오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주차장 입구부터 전쟁을 치르고 있다. 모두가 따뜻함을 쫓을 때, 기자는 겨울 추위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겨울은 겨울다워야지’라는 말도 있듯이 온전한 겨울을 느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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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원 어시장을 찾은 고객이 상인과 흥정을 하고 있다.


    ◆겨울바다 진해 용원 어시장

    용원으로 향한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10월 평년보다 느지막이 당도한 태풍 ‘차바’로 이 일대 어시장은 물바다가 됐다. 차바가 몰고 온 강한 비구름은 오전에만 시간당 100㎜가 넘는 비를 쏟아 부었고, 마침 만조 기간과 겹치면서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물에 잠겨가는 집과 가게를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를 치유하려고 할 때쯤 또다시 용원 어시장은 백중사리(해수면의 조차가 연중 최대로 높아지는 상태)로 침수 피해를 겪었다. 물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던 이들이지만, “지겹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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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 포구


    하지만 지난 17일 오전에 찾은 용원 어시장은 차바의 상처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도로 한쪽에 자리 잡은 상인들은 쇠창살을 엮어 대구를 말렸고, 바닥에는 대구와 물메기, 밀치, 문어, 호래기, 해삼, 꽃게, 굴, 미더덕, 소라, 그리고 홍합과 바지락 등 조개 따위를 담은 바구니를 펼쳐 손님을 유혹했다.

    중절모가 인상적이었던 한 상인은 “요즘 물때가 워낙 거칠어 고기잡이배들이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보시다시피 생선 종류도 많지 않다”고 푸념했다. 어획량도 적고 종류도 많지 않아 생선과 해산물 등의 가격은 평소보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은 어물전 앞을 두리번거리다 상인이 제시한 가격에 놀라 발걸음을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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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포 포구


    어물전 한쪽에선 아낙네들이 바구니를 의자 삼아 굴 껍데기를 깠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작업에도 지루한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늘상 하는 일인데 지겨울 리가 있겠나.” 아낙네가 쥔 칼은 정확하게 굴 껍데기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껍데기 사이에 숨은 속살을 재빠르게 건져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 다리만한 대구를 해체하는 작업이 펼쳐지고 있었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뼈를 발라내고, 수놈이면 곤이를 잘라내고, 일말의 주저함 없이 펼쳐지는 종합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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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치 포구


    용원 어시장이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생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시장 입구에서 쥐포를 건네던 한 상인은 태풍 차바로 수천만원의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차바 피해로 수개월을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면서 “수천만원의 재산 피해를 봤지만, 보상액은 100만원밖에 안 돼 마음이 답답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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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구 남양동에 위치한 ‘황포돛대 노래비’.


    ◆안골포에서 삼포로 가는길

    용원 어시장을 떠나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안골포다. 어시장으로부터 약 3.4㎞, 자동차로 10여 분 정도 떨어진 이곳은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년) 7월,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안골포에서 왜 수군의 주력대를 격멸한 해전으로 잘 알려졌다. 현재는 신항만 매립공사와 남쪽으로 부산신항만이 건설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 돼 버렸다.

    안골포 포구 역시 배 몇 척만 떠 있을 뿐, 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나마 굴 도·소매상들이 해안을 따라 여러 곳 줄지어 있어 예전 포구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안골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다. 제덕동 진해수협제덕위판장을 지나 황포돛대 노래비, 흰돌메공원까지 내달리면 진해 웅동 배후단지를 비롯해 서컨테이너 배후단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매립지를 보면서 인간 활동의 위대함을 느꼈다. 한편으로 자로 잰 듯한 인공적인 해안 모습이 위압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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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돌메공원에서 삼포 포구까지 이어진 길은 자동차로 5분이면 충분했다. 해안과 산을 따라 조성된 구불구불한 길은 지난 1980년대에 유행했던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의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굽이굽이 밤길 걷다 보면/한 발 두 발 한숨만 나오네/아~하 뜬구름 하나/삼포로 가거든/정든 님 소식 좀 전해주렴/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사랑도 이젠 소용 없네/삼포로 나는 가야지.

    그렇게 도착한 삼포 포구는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였다. 배들이 드나드는 어귀를 제외하곤 사방이 산이었다. 포구에는 낚싯배들이 즐비했다. 간혹 낚시꾼 여럿을 모아 출항하는 배도 보였다. 잔잔한 바닷물에 얌전히 떠 있는 배들 위로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했다. 낚싯배에 올라탄 한 어부는 야간에 물고기를 잡을 때 어류를 모여들게 할 때 쓰는 집어등을 추위도 아랑곳 않고 공들여 손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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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동섬.


    ●명동 포구에서 행암까지

    삼포를 뒤로하고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명동 포구로 향했다.

    명동은 두 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 동섬이 있다. 동섬은 육지인 명동과 평소에는 떨어져 있다가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틈을 타 육지화된다. 섬 외곽으로 데크로드가 설치돼 있지만, 한 바퀴를 둘러봐도 길이가 채 100여m가 되지 않는다.

    명동 앞바다에는 창원해양공원이 들어선 음지섬이 있다. 명동에서 다음 목적지인 수치까지 가는 길 역시 자동차로 5분이면 충분했다.

    명동과 수치 사이에는 STX조선해양이 있다. STX조선은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를 의식하지 않는 듯 선박 건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선소 외부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주차할 곳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차들은 조선소 외곽지역인 수치마을 입구까지 점령했다. 간혹 노란 유니폼을 입은 STX조선소 근로자들이 해안 도로를 따라 걷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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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골포


    STX조선을 지나 도착한 수치 포구 역시 삼포나 명동 포구와 마찬가지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수치마을은 STX조선과 흥망성쇠를 함께한다.

    수치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어부로서 현재까지 마을을 지키고 있는 곽모(65)씨는 마을 변천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참 대단했다. 지금과 같은 겨울에는 대구잡이 어선들이 수치마을 포구를 들락날락했고, 유동인구도 많았다. 어부들과 마을 인구도 줄어드는 찰나에 STX조선이 생겼다”며 “매일 오전 10시 30분만 되면 STX조선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와 돈도 쓰고 회식도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STX조선소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마을에는 제법 큰 빌딩들이 있었고 그 안에는 모텔과 노래방, 음식점 간판이 내걸려 있었지만, 문을 닫은 지 오래돼 보였다. 포구에는 정박한 배들이 쓸쓸히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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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암 포구에 설치된 목재데크 산책로.



    수치를 떠나 마지막 행선지인 행암으로 장소를 옮겼다.

    행암은 포구와 마을 사이에 놓인 기찻길이 인상적인 곳이다. 장천 부두와 탄약 부두 사이에 있는 이 마을은 진해에서도 가장 오래된 어촌마을로 꼽힌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멸치잡이 호황으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지난 1970년대, 장천에 비료공장인 진해화학이 들어서고 3년 뒤인 1973년에는 탄약 부두와 연결되는 철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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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에서 알아주는 낚시 명소인 진해 행암 포구 앞에 녹슨 철로가 놓여 있어 방문객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선물한다.


    행암은 1년 내내 전국 낚시꾼들이 모여드는 낚시 명소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장어, 가을에는 볼락과 돔이 많이 잡힌다. 이맘때는 농어가 제일이다. 이 때문에 포구에 정박한 배들은 대부분 낚시꾼을 태우기 위한 배들이 많다.



    군부대와 행암 포구 사이에는 목재데크 산책로가 설치된 곶이 자리 잡고 있다. 5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는 곶의 끄트머리에 다가서면 진해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글=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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